2013년 9월 2일 월요일

[미국 시리즈 기사]도모다치 작전의 후유증 Part4




도모다치 작전의 후유증
Part4. 후유증을 안고 살다

덩치큰 흑인 해군 한명이 벌거벗은 채로 갑판밑에 줄쳐놓은 구역안에 서있었다.
그는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그는 계속 중얼거렸다, '아내가 선물해준 부츠만은 제발..'
그러나 담당자들은 그의 모든 것을 벗기고, 그의 몸을 문질러 씻도록 했다."
미 해군 신예항모 Ronald Reagan호의 항해사 Maurice Enis가 당시를 회상했다.

"담당자들은 그에게 아예 연마제를 줬다. 그건 선체를 문질러닦는 것으로
모래종이 같은 것이었다.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전신을 씻었다.
그리고 다시 가이거카운터로 온몸을 체크당했다. 그는 가이거카운터가
반응하지 않을 때까지 반복해서 씻어야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차례가 됐다."


지진과 거대쓰나미가 덮친 일본의 북부연안에서 대규모 수색과 구조활동을 전개한
도모다치작전은, 암울한 국면을 맞이했다.

복합적인 재해가 약2만명의 사망자를 냈고, 연안의 사회기반을 파괴했다.
일본어로 친구를 뜻하는 도모다치작전은, 일본정부 요청으로 시작되어,
미 국무성과 국방성에 의해 짜여졌고, 80일간 전개된 작전이었다.

국방성은 이 작전에 일본국내 63개 미군기지를 모두 참여시켰고, 해군과 해병대 5,500명이 
탑승한 항모 Ronald Reagan호, 순양함 Chancellorsville호와 4척의 구축함 Preble, McCampbell, Curtis Wilbur, McCain, 그리고 몇척의 보조함선으로 편성된 기동함대도 

그러나 순식간에 구조작전은 위험하고 지도에도 없는 길로 들어섰다.
지진이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중의 1호기를 파괴했고, 쓰나미가 1호기부터 4호기까지
안전시스템의 모든 전력을 절딴냈다.
작전 지휘부에는 이번엔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와 에너지성도 참여하게 됐다.

1호기부터 3호기의 핵연료는 빠르게 멜트다운되었다.
4호기의 핵연료는 사용후연료수조에 들어가있었는데, 그 위치는 원자로에 넣기편하게
건물 윗쪽에 있었다. 그런데 3월15일 폭발이 원자로건물 지붕과 벽을 날려버려,
방사성물질이 대기중에 분출됐다.

각 원자로건물에서 냉각수를 순환시킬 전력이 상실되었고, 일본측은 당장 무슨수라도
써야했다. 그들은 미군으로부터 고압펌프차를 빌어서, 건물내에 물을 퍼부었다.
물은 사용후연료수조나, 원자로, 건물바닥으로 쏟아져서, 결국엔 바다로 흘러나갔다.
그와중에도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방사능재난을 최소화해 보이려했다.
도쿄전력은 방사능누출은 거의없다고 발표했다. 실제로는 매우 높은 양의 방사능누출이 
있었고, 통제불능 상태였다.

일본국내에는 약7만명의 미국정부관계자, 군관계자와 그 가족이 살고있으며, 그들은 모두 
피난해야할지 우려했다. 후쿠시마로부터 300km 남쪽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는 검출되는 
방사선량 증가에 따라, 가족들이 피난했다.
요코스카 기지를 위협할만큼의 방사선량이라면, 후쿠시마 사고원전의 원자로들이 이미
절딴났다고 NRC관료들이 유추했고, 아무리 일본측이 둘러댔어도, 미국관료들은 일본측이 
정직하지않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다만, 최우선 과제는 지상에 체재하는 미국 관계자들의 안전이었고, 도모다치작전 종사자에 
대해선 간과되었다. 그 순간에도 해군은 후쿠시마 해안에서 3km 거리에 머무르며, 
헬기를 왕래시켜가며, 생존자를 수색하고, 구원물자를 공급하고 있었다.
바다에 있던 미국인들은 그들의 임무를 수행중이었던 것이다.


  Maurice Enis

조타수 Enis가 방사능오염되어, 줄을 서게 되다니,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조타수의 중요한 임무가 2가지 있다. 

하나는 물론 배의 조종이고, 또하나는 후속 함선에게 기함으로부터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신호기를 돛대에 게양하는 일이다.

어느날 Enis는 2주일동안 돛대에 게양돼있던 성조기를 내리고, 함장실에 보관하라고 명령받았다.
"나는 국기를 내리고, 잘 접어서 오른팔로 안고갔다. 그리고
제자리에 보관했다. 별다른 생각할 것도 없었다."

저녁식사후, Enis가 센서앞을 지나가는 순간, "갑자기 모든 경보가 울렸다." 
Enis가 회상했다. "그들은 일제히 내게 소리쳤다. '아무것도, 누구도 만지지마라!
그대로 오염처리구역으로 직행해라!'라고.."

줄쳐놓은 오염처리구역 앞에는 체크를 기다리는 남녀가 줄서있었다.
Enis는 기다릴 필요없이, 알려져 있어서, 맨앞으로 불려나갔다. 
이미 알몸이 된 병사가, 한장의 타올로 앞을 가린채, 서있었고, 사관과 상급군의관이 
전시회 그림을 보듯 구석구석 훑어보는 곳이었다. 그들이 Enis도 불렀다.

"얼마전까지도 배에 방사선이 없다고 들었다." Enis가 말했다.
"그들이 배안에 오염처리구역을 설치할 때도, 왜그러는지 설명은 없었다."
"그들은 먼저 내 부츠를 체크했는데, 아무일 없었다.
다음에 내손을 검사했는데, 센서가 미쳐버렸다.
검사하던 사람이 펄쩍 물러나면서, 외쳤다. '그에게서 물러나라!'"

"그 다음 순서는 나도 알고있었다. 내팔은 비닐봉지로 감싸졌고, 모두들 내게서 멀어지라고 했다. 마치 전염병 환자처럼 취급당해서, 나는 신경발작을 일으킬 뻔했다.
그들은 나를 만지지 않았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내가 어디로 가서 뭘해야 하는지, 명령했다. 나는 꺼끌꺼끌한 페인트 제거제로 내손과 오른쪽 몸을 문질러야 했는데, 피부가 두겹은 벗겨졌다.

Enis에게서 얼마나 방사선량이 검출됐는지, 그때나 그뒤에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승무원 중에서 최대수준의 방사선량이었다고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당시 Enis가 제일 걱정한 것은 피폭선량 자체가 아니었다.
그를 신경쓰이게 한건, 알지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사관들이 그를 보며, 큰소리로 명령을 해댔다.
남녀 동료들은 오염처리구역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말없이 그를 보고 있었다.
"정말 난처했었다." Enis가 말했다.
알몸이 된 채, 사관들에게 야단을 들으면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몸을 씻어야 했는데, 무슨 일인지 내게 말도 없어서, 나는 무서웠다. 
그들의 태도를 볼때, 내가 진짜 곤경에 처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승무원들을 두렵게 한 것이다."

"우리중의 누구도 방사선 전문가가 아니었다.
나는 죽어버리는 걸까?
나는 암에 걸리는걸까?
아니면 배에서 내려야하게 될까?
내 피부가 부풀어오르거나, 뭔일이 날지, 알수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알수없었다."


해군은 방사성물질이 비눗물로 씻겨지는 줄 믿고있었다.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맞다.
가장 약한 종류인 알파선을 내는 방사성물질은, 표면이 매끄러운 경우에 씻어낼 수 있다.
그보다 강한 베타선을 내는 방사성물질도, 피부에 상처가 있거나 해서
그로부터 들어가지 않는한, 씻어낼 수 있다.
그러나 해군이 쓰는 페인트제거용 연마제는 피부 표층을 벗겨냈다.
한편 항모 Reagan호 비행갑판은, 플라스틱이나 유리같은 매끄러운 소재가 아니다. 
단순히 문지른다고 해서, 그런 다공질물질에서 방사성물질을 씻어낼 수 없다.

Reagan호 승무원들은 먼바다에는 방사능오염이 없는 줄 알았고, 
항해사 Enis도 방사능구름이 진짜 구름처럼 그 모양을 피해갈 수 있는 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드러난 것은, 그 방사능구름이 도처에 있어서,
웬만해선 회피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400m 길이 갑판에서는 또다른 종류의 경보가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디지털 손목시계를 하고있었다." 조타수 Jaime Plym이 말했다.
"그 시계가 별안간 서버렸다. 누가 마침 방사능 때매 그럴수 있다고 했는데, 
그때 갑판에 있던 대여섯명이 확인했더니, 디지털 시계가 모두 서버린 것이다. 
그중에 매우 비싼 것도 하나 있었는데,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처음에 웃었다. 그러나 점점 웃지 못하게 됐다.
더이상 웃기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 쳐다볼 뿐이었다."


  Jennifer Micke

갑판밑에서 일하는 병사들은 그런 정보도 모르고 있었다.
Jennifer Micke에 따르면, 제트기 정비사들은 귀환한 기체로부터 거의 모든 부품을 떼어내서 방사선량을 측정해야했다.
거대한 격납고 엘리베이터는 사용이 제한돼있었다.

"해치감시원을 두게 됐다." Micke가 회상했다.
"비행대원 중의 한명이 의자에 앉아서, 아무도 갑판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갑판출입은 정면출입구만 쓰도록 제한됐다. 
더이상 함내가 오염되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루종일 지키고 앉아서, 잘못된 길로가는 사람들에게 야단쳤다."

Micke는 비행갑판의 제트기가 방사능오염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비행갑판에서 내려올 때마다, 신었던 부츠를 씻는 담당자가 있었고, 
씻은 부츠를 한데 모아서 가져갔다. 그래서 비행갑판에 나갈때는
부츠 위에 부츠를 덧신었다가, 돌아오면 겉의 부츠를 내놔야 했다."

"또한 생물학전용, 화학전용, 방사선용 방호복을 착용해야했다. 
마스크와 산소통까지 착용하도록 지적됐었는데,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이들 조치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항모는 복잡한 산업지구같은데, 언제든지 설비의 크고작은 부분이 망가진다. 
정상적인 마모 때문이거나 사고 때문이기도 하다.
도모다치작전 수행중, 헝겊조각을 문틈에 끼워서 방사성물질을 막으려던 시도는, 
여러가지 문제때매 효과가 줄어버렸다. 망가진 문짝과 망가진 문틀도 있었고, 
어떤 곳은 방수문을 떼어다가 수리중이었다. 
설계상으로 항모 Ronald Reagan호는 격리구간의 연속이었지만,
실제로는 공기가 얼마든지 들락거리는데, 지하묘지의 통로보단 낫다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고

미 해군의 공식적 입장은 장병들에게 방사능오염은 거의없었다는 것이다. 
국방성은 도모다치 의료기록부를 약2년에 걸쳐 만들었는데, 
일본에서의 재해중에 다양한 수준의 방사능에 노출되었던 약7만명의 미군관계자 및 가족의 기록을 모은 것이다. 

기록부는 2012년12월에 완성됐다. 한달뒤, 국방성은 전신 및 갑상선의 최대피폭량을 
검토한 결과, 더 조사를 필요로 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결론내렸다.
피폭으로 인한 증상패턴이 나타나는지, 장기간에 걸쳐 추적할 수있는,
유일하게 역학적으로 타당한 수단으로서 기록이 계속될 수가 없게 됐다.

7만명의 피폭 미국인의 의학적인 문제를 정확히 기록하려는 입장에서 볼때,
그 기록부가 첫단계부터 결함이 있었던 사실은 간과되었다.
해군은 각개인을 철저히 진단해서, 그들의 건강상태의 정확한 기준선을 만드는 일을 하지않았다. 그대신, 기록부는 그들 모두의 최신 건강상태를 섞어놓은 것이었다.

실제로, 결국 각개인에게 실제 건강상태에 의한 기준선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런 기준이 없으므로, 미국 재향군인회의 의사들은 종양이나, 천식, 피부나 체내의 낭포 등의 증상이 방사선 피폭 때문인지, 아니면 도모다치작전 참가전부터 문제가 있던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개인의 기준이 없으니, 작전에 참가한 남녀다수에게 공통된 증상이 있다는 기록이라도 있지않는한, 퇴역군인들에게, 그들의 건강문제가 방사선피폭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할 기회는 거의 없는 것이다. 

  Ed Lyman

당시 일본에 있던 미국인들이 거의 안전했다고 결론내린 것이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Ed Lyman은 말한다.
참여과학자연맹의 핵물리학자인 그는, 핵안전기술자 Dave Lochbaum과, 퓨리처수상 저널리스트 Susan Stranahan과 함께 멜트다운에 관한 책을 집필했었다.
미국정부와 독립연구자들이 모두 후쿠노빌의 오염물질량을 산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공통결론은, 최악일 정도는 아니었다." Ed Lyman이 말했다.
"그 단기간내에 누구든 심각한 피폭량이 될수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피폭량은 단지 후쿠시마에 매우 가까운 곳에서는, 널리 알려진, 지속적인 건강유지에 손상을 유발할만한 수준을 약간 넘는 것이었다.

"다만, 나는 데이타를 수집하는 것을 늘 찬성한다. 대개의 경우에 방사선으로 발암증세가 나타나기까지는 5년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항상 더많은 데이타를 모을수록, 더 좋다."


  Arnie Gundersen

다른 전문가들은 더 회의적이다.

"나는 처음부터 도모다치 의료기록부를 믿지않았다." 
원전기술자이며, 방사성물질 확산관련 전문가 Arnie Gundersen은 이렇게 말했다.
"Utah 사막에서 원폭으로 병사들을 생체실험했을 때, 생존자에 관해 국방성이 작성한 의료기록부는 엉터리였다. 
병사들의 실제 피폭선량은 국방성의 숫자보다 훨씬 컸다."

"국방성이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했고, 그 피해를 최소화했던 역사를 아는 나로서는, 최신 발표에 대해서도 신뢰따위 갖을수없다."

Gundersen은 도모다치 의료기록부를 계속하지 않는 점에 대해,
"실망했지만, 놀랍지는 않다"고 했다. "Ronald Reagan호 승무원들은 국방성측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피폭된 것이 분명하다. 많은 승무원들에게 공통 증상이 나타나고있어, 그것을 집단 히스테리 따위로 치부할 수 없다."

"계산되지 않은 큰 문제 중의 하나가 희가스이다. 희가스가 항모를
덮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달라붙지는 않았지만, 갑판을 씻어내는 등으로 
나와있던 사람들이 흡입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나쁜 조짐이었다.
160km나 떨어진 먼바다에서, 방사성입자를 들이마실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놈의 방사성입자를 들이마셔서 어떠냐고? 그들의 폐는, 
항모의 갑판이나, 바다처럼 마찬가지로 똥으로 오염된 셈이다.
국방성은 병사들의 폐속에 들어간 방사성입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HCzuPm4T4qo
(Fukushima Radioactive Aerosol Dispersion)


결국 도모다치작전에 참가한 당사자들이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뜻밖의 피해

"내 건강은 작년초부터 나빠졌다."
Reagan호의 F18 기체정비사이며, 위험물취급책임자 Micke가 말했다.
"2012년3월30일 나는 California에서 명령변경을 받기위해 대열에 서있었는데, 
처음으로 의식을 잃었다."

"단순한 탈수증세일거라 해서, 의무실에 앉아 물 한병을 마셨다. 
그러나 4월29일 또다시 쓰러져, 이번에는 응급실에 옮겨졌다.
나는 두통을 호소했는데, 사람들은 '아마 머리를 부딪혔겠지'라고 말하며, 
CT스캔을 했다. 그러자 뇌에서 종양이 발견됐다고 해서, 
그뒤로 2번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해군을 제대하게 되었다."

전문적으로는, 의사가 Micke의 전두엽에서 발견한 것은 
희돌기 성상세포종(Oligoastrocytomas) 2기였다. 
그것은 악성으로 난치성 암이며, 뇌의 언어중추 영역에 생긴다.
수술로 암을 제거하면, 빈자리가 때로 함몰되어, 문제되는 수가 있다.

2012년가을에 두번째 수술후, Micke는 "현재로서는 암세포 활성이 없다"고 들었다.
암을 남겨둔 부분이 있는데, 그대로 가만히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암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아서,
최악의 상태는 아니다."

"나는 두달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지만,
분명히 살기 위한 것이다."

그녀의 생활은 지금, Wisconsin주 Thorp시의 부모의 목장에 돌아와서, 
암 재발에 대비하는 것이 되어있다.
"현재 나는 여러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해서, 주5일 일하는 것을 비롯해서 뭐든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나는 차도 없고, 내가 어디를 가든 부모가 태워줘야 한다."

Micke는 예측할 수 없는 병을 안고 사는 것에 스스로 익숙해지도록 했다.
"내 미래계힉은 심하게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여전히 대학에 갈 생각이 있고, 좋은 직업을 갖고, 삶을 이어갈 계획이다."
암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냥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잘 대처해가려 한다."

"오늘을 열심히 살고, 나자신을 잃지 않고, 최대한 인생을 즐겨야겠다."

  Jennifer Micke

그녀는 동전을 고소한 원고인단의 한명이다.
후쿠시마 사고원전 원자로의 상태와, 방사능누출의 실태에 관해, 미국정부를 오도한 것으로, 결국 그녀의 건강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소송을 하는 것은 단지,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한다." 그녀가 설명했다.
"사태를 은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인생을 망친다. 
이런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나는 것을 보기싫다."

"해군에 관해서는, 그 상황에서 더 할수있는 게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리 훈련된 것도 아니었다. 제한된 정보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함께 일했던 동료들, 내가 지냈던 장소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처음에 쓰러지고, 진단받을 당시에,
아직 해군소속이었던 것이다. 현재까지 그녀의 치료비는 해군에서 해결됐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
"의사들은 내 병이 군복무와 관련됐는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Micke가 말했다.

국방성이 방사선으로 인해 장병들에게 어떤 질병도 발생하지 않을거라고 미리 결론내리고, 도모다치 의료기록부를 중단해버려서, (건강문제의 패턴을 추적할 유일한 역학적 수단이었을텐데도) Micke는 난치성 암환자이면서도 치료를 못받는 퇴역해군이 될지도 모른다.

빨리 늙는다

Michael Sebourn은 해군 비행기 정비사로 근무한 17년간, 온갖 부품을 다뤄왔다.
그가 근무한 아쓰기(厚木) 기지의 헬기들은 오래된 거라서, 안전과 최대의 성능을 위해
부품을 교환했다.

그러나 도모다치작전 중에는 헬기 부품, 특히 라디에이터와 에어덕트를
비행후에 매번 교환해야했다. 대량의 방사성물질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라디에이터를 다시 쓸수는 없었다." Sebourn이 말했다.
"교환해야했다. 그것들을 비눗물 속에 넣고, 그통을 경찰통제선처럼 격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방사선이 나오는지 매일 측정했다."

"비눗물통이 방사선을 뿜고있었다. 몇년이고 방사성물질이 붕괴되면서
방사선이 나올것이다. 우리는 입었던 Tyvek(듀퐁제 부직포) 방호복도
벗어서 조각내서, 통에 담았다. 표시된 거나, 더러운 거, 온갖것이
방사능오염된 거라서, 폐기통에 넣어야했다.
폐기통에 많이 넣을수록, 방사선 방출도 많아서, 마치 먹이를 주는듯했다."

2011년봄의 난리였던 80일간, Sebourn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2011년5월에 그의 8살난 아들 Kai가 이상하게 아팠다.

"아들이 구토발작을 계속해서, 3주나 학교를 쉬었다." Sebourn이 말했다.
"학교규칙에, 한번만 토해도 집에 보내는데, 아들은 하루에 10번~15번
구토를 했다. 특별한 느낌은 없는데, 구토가 멈추지않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의사들은 스트레스성이라고 진단했다.
아직도 증상은 계속되는데, 원인을 못찾고 있다."

그러나 Sebourn 자신은 건강했다. 2012년이 되기까지는..

  Michael Sebourn

"2012년3월 나는 해군 군의관들이 설명못하는 증상이 생겼다." Sebourn이 말했다.
"오른쪽 몸의 능력이 평소의 40~50%로 떨어진 것이다.
나는 MRI를 두번, X레이 및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어떻게 된건지 밝혀내지 못했다."

"팔, 가슴, 어깨에 통증이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 왼쪽몸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원래 오른손잡이라, 오른쪽을 쓰는 일이 많은데, 이상한 일이다."

그와 아들 Kai도 유전자 상담이나 검사는 받지않았다.
17년간 해군근무한 Sebourn은, 퇴역후에도 5년간은 의료비 기타를 해군이 부담하는데, 그뒤에는 100% 자기부담이 된다.
"본인은 퇴역후 얼마간 해군이 돌봐주지만, 가족에겐 그런 권리도 없다."

그 5년이 지나버리면 어떻게 되나?
"그거 훌륭한 질문이군." Sebourn이 말했다.
마치 단번에 노화된듯이, Sebourn의 오른쪽 몸은 계속 쇠약해지고있다.

"나는 도모다치 의료기록부가 7만명의 군인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인줄 알았다.
그리고 10년후, 15년후에라도 건강문제가 생기면, 작전과 관련된 만큼,
우리는 치료대상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국방성은 마지막 순간에 의료기록부를 봉인해버려서,
우리가 뭔일을 당할지 알수없게 돼버렸다."

Sebourn이 동전을 고소하는 원고인단에 함께한 이유의 일부는,
피해를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과, 장차 필요해질 의료에 대한
보상을 하라는 것이다.

"나는 해군에 대해 화가나지는 않았다. 그들도 어떤 상황인지 몰랐고,
처음겪는 일이었다. 해군은 우리에게 거짓말하지 않았다.
해군은 할수있는 최선을 다했다. 우리 모두가 암흑속을 날았던 것이다.

관료체제 속의 항해

항모 Ronald Reagan호가 이끄는 제7함대 기동부대는, 도모다치작전이 끝나자,
잽싸게 일본을 떠났다. 항해사 Plym과 Enis는 안도했다.
이제 끝났다. 그리고 방사선검사팀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내부피폭에 관해서는 검사도 안했다." Plym이 말했다.
"그들은 센서로 몸을 겉으로 훑었을 뿐이었다. 혈액검사나, 다른 검사도 없었다."

"우리는 80일간 거기에 있었다." Enis가 말했다.
"그리고 임무가 끝나갈 때, 나는 턱밑에 작은 혹이 생긴걸 알았다.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가봤더니, 담당자는 이미 배를 떠났다."

"그뒤, 나는 악성 위궤양에 시달렸고, 2개더 혹이 생겼다.
하나는 허벅지밑에, 또하나는 두눈 사이였다."

Reagan호는 Peugeot Sound(Washington주)를 향하고, 거기서 1년간 오염제거와
전면적인 분해점검을 하게됐다.
해군에 4년계약이었던 Enis는 Washington주 Bremerton에 있는 Olympic College에
등록했다. 거기서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5년계약인 Plym의 퇴역을 기다리기로 했다.

"해군생활중에 꼭 하던 소리가" Enis가 회상했다.
"퇴역하면 머리를 기르고, 수염을 맘껏 기르겠다는 얘기였다.
해군에 있는 동안엔 늘 수염과 머리를 깎아야 하니까."

"그래서 퇴역한뒤 나는 머리를 기르고, 수염도 냅뒀다. 그런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요즘엔 빗질을 거의 안한다. 빗으면 빗에 머리가 한뭉치씩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씨쓸 때, 오른손이 떨리는 것도 알게됐다."

  Enis & Plym at Olympic College

Enis는 185cm 키의 덩치큰 운동선수로, Olympic College의 미식축구팀에서 MVP였다.
그의 400m 주파시간은 올림픽 예선기록과 2초차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를 버틸 체력조차 찾기 힘들다.

"나는 아직 25살이다." 그가 말했다. "그런데 몸이 아작나버렸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애써서 몸을 만들어왔는데, 이제는 몸속 스위치가 줄줄이 꺼지는 느낌이다. 노인이 된 기분이다. 이런건 싫다."
"방사선이 뭔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건 내가 한게 아니다."

Enis는 해군측에서 그의 의료기록이 "없다"고 들었다.
현재 그의 문제와 Reagan호에서의 임무와의 인과관계를 추적할 길이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치료비는 해군이 부담하지 않을 것이다.

  Jaime Plym

Plym에게는 처음에 문제가 신경쓰이는 것이었다.
"내 생리주기가 6개월간 완전히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의사들은 내게 수억번이나 임신검사를 했다. 그밖에는 왜그런지 원인을 찾지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임신한게 아니었다."

"그리고 6개월후에 너무 심한 생리가 와서, 대량의 출혈을 하고 응급실에 갔는데, 의식을 잃었다."
그것은 의학적인 설명이 안되는, 반복되는 현상이었다.
정상적인 생리기간이, 이제는 급격하게 통제못할 출혈현상으로 돌변해서, 병원에서 대처해야하게 돼버린 것이다.

2012년3월에는 천식도 생겨서, 2012년12월에 해군을 퇴역하기까지 6번의 발작을 일으켰다.

해군은 Plym에게 발생한 부인과증상이 해군근무와 관계된다고 생각하지 않고있다.
도모다치작전 참가로 야기된 건강문제는 없다고 국방성이 결정했기 때문에,
방사성물질을 흡입함으로써 Plym의 폐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부정되었다.
결국 그녀도 지금, 건강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Enis & Plym – Hudson Riverside Park

그들 전직 항해사는 지금, Florida주 Jacksonville에서 St. Johns River State College에 다니며, the University of North Florida에 편입하길 바라고 있다.
두명 모두, 해군에서의 좋은 추억을 갖고있다.

"내 한쪽에서는 해군이 장병을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믿고 싶다." 그녀가 말했다.
"그당시 우리가 얻은 정보는 거의 없었다는 걸 기억한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후쿠시마 사고원전에 위험이 없다, 방사능누출은 안됐고, 원전은 통제하에 있다고 했던 것이다."
"거짓말한 것은 일본인이다. 나는 그들에게 책임을 추궁한다."

그러나 Enis는 복잡한 입장이다.
"일본인이 미국정부에 거짓말했다." 그가 말했다.
"내 한쪽에서는 해군이 장병을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해군이 목적을 위해서 우리를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내 또한쪽에서는, 아니 해군이 그랬다고 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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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씩 내용요약 :

방사능에 오염된 병사는 온몸을 연마제로 벗겨냈다.
구원활동이었던 작전은, 순식간에 위험한 길로 급커브틀었다.
요코스카에 경보가 울린 그날, 미국은 일본이 뻥친걸 확신했다.

Enis는 깃발 한번 만졌다가, 방사능오염 최고기록을 세웠다.
후쿠시마 앞바다건 먼바다건, 방사능구름이 널려있었다.
미 해군은 그속에서 피해다니고 있는 줄로 착각했다.

갑판에서는 전자시계가 죽으면서, 주인에게 방사선의 위험을 알렸다.
정비사들은 부츠를 한번신고 내던지는 나날이었다.
의료기록부는 개인의 건강상태를 실제로 기록한 게 아니었다.

Arnie Gundersen은 국방성의 예전 짓거리 때매 아예 믿을 수없댄다.
그는 희가스를 장병들이 들이마신 문제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Jennifer는 뇌종양으로 두번 수술하고, 요양중에 원고인이 됐다.

↓노르웨이 기상청 2011.5.9~13 제논133 시뮬레이션

Michael은 정비사인 탓에 방사능오염된 헬기부품을 허구헌날 만졌다.
그의 아들 Kai는 계속 토하는데, 학교다니기도 어렵다.
Michael은 오른쪽 몸이 노화되고, 왼쪽 몸이 커지고 있다(?).

운동능력이 자랑이던 Enis는 하루를 지낼 기운도 없고, 노화됐다.
Plym은 매달 대량출혈로 응급실에 실려가야하고, 천식이 생겼다.
Plym은 일본인을 추궁하는데, Enis는 한편으로 미군도 마찬가지라고 느낀다.

이것으로, "도모다치 작전의 후유증" 시리즈 Part1 ~ 4까지 모두 마쳤다.
Roger Witherspoon의 블로그에서 더이상의 글은 이어지지 않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