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6일 목요일
미국에서 시민이 원전을 폐로로 몰아붙인 내막을 강연
미국에서 시민이 원전을 폐로로 몰아붙인 이유
당사자가 캘리포니아주 원전을 둘러싼 공방을 증언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모든 원전을
폐로하기로 결정한 독일만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이 입지하는
미국에서도 원전이 잇따라 폐로에 내몰리는 사태가 되고있다.
얼마전 캘리포니아주에서 샌 오노프리(San Onofre)원전을 폐로로 몰아붙인
활동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주민대표와, 후쿠시마 원전사고당시 미국 NRC
위원장을 지냈던 인물이 방일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시작된 탈원전
움직임과 시민에 의한 행동의 중요성에 대해 도쿄에서 강연했다.
←샌디에고포럼(San Diego Forum) 시민측 대표로,
주택도시계획건축가 도건 존슨(Torgen Johnson)씨
샌 오노프리원전을 폐로로 몰아붙였다
'후쿠시마원전사고가 미국에 끼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9월23일 강연회
(주최는 원자력자료정보실)에서 강연한 것은 샌디에고포럼 시민측 대표로,
주택도시계획건축가 도건 존슨(Torgen Johnson)씨와 전직 NRC위원장
그레고리 야스코(Gregory Jaczko)씨다.
일본과 비슷한 미국의 원전을 둘러싼 구도
존슨씨는 2011년3월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캘리포니아주에서
최대규모 원전의 폐로를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2년뒤인 2013년6월4일에는
야스코씨와 일본의 칸 전수상 등을 초빙하여
'후쿠시마:캘리포니아로 현재진행중인 교훈'이라는 강연회를 개최했다.
그 사흘뒤 샌 오노프리원전을 폐로한다고 전력회사 Southern California Edison사가
결정했다. 현재 폐로를 위한 작업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폐로에 내몰린 샌 오노프리원전 2호기 및 3호기(각 출력108만kW, 가압수형경수로)
운전을 정지한 것은 2012년이었다. 2012년1월에 3호기에서 미쓰비시중공업제
증기발생기에서 방사능누출이 발견된 것이 계기였다. 다만 존슨씨에 의하면,
"증기발생기의 불량은 폐로를 향한 최후의 일격이었으며, 가동정지는 캘리포니아
주민이 원전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부터
주민에 의한 끈질긴 운동이 원전을 폐로에 몰아붙인 원동력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원전과 입지 지자체의 관계는 일본과 비슷한 모양이다. 존슨씨에 의하면
고용확보를 이유로 입지 지자체가 원전을 유지하려고 하는 구도는 미국에서도 존재하며,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시점에서는 "선거로 뽑힌 사람들은 원전문제에 전혀 관계하고
싶지않다는 자세였다."고 말한다.
또한 후쿠시마 사고이전으 정보는 많은 부분이 전력회사로부터 제공된 것이며,
"원전은 청정하고 안전하며 신뢰성이 높고, 비용도 매우 싸다는 낙관적인 정보투성이였다."
"전력회사 홍보부문 책임자가 지역의 개발계획을 담당하는 행정조직 책임자를 맡고 있거나,
현지 상공회의소, NGO나 환경단체에까지 기부를 하고있던 것도 나중에 드러났다."고도
존슨씨는 말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그런 지역사회의 모습에 근본적인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원전사고로부터 2주밖에 안된 사이에 8,800km나 떨어진 존슨씨 동네에서 팔리던 우유에서도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 존슨씨가 나서게 된 계기였다.
"3명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로서, 아내와 나는 일본에서 벌어지는 원전재해의 실정과,
우리집에서 48km밖에 안되는 샌 오노프리원전의 안전성을 조사했다."
존슨씨네는 원전의 입지상황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주의 쓰나미의 역사나 활단층에
대해서도 공부를 더해갔다. 그로부터 많은 것을 알게 됐다. 2개의 원자로가 해안에 너무
가깝게 설치돼있는 것과, 활단층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 반경80km권내에 740만명이나
사람들이 살고있는 것을 알게됐다.
만일의 경우에는 막대한 피해금액, 내부관계자도 중대증언
그리고 반경48km권내의 도시에서 주택가격을 통해 시민그룹멤버들이 계산했더니,
주택가격은 4,355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금액은 미국의 프라이스-
앤더슨법(Price–Anderson Nuclear Industries Indemnity Act)이 규정하는 원전사고시의
배상 상한액 1265억달러와 비교해서 그 30배를 훨씬 넘는 것이므로, 만일 원전이
대사고를 일으키면 주민이 거액의 재산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샌 오노프리원전의 위험성이 인식되는 가운데, 내부에 정통한 관계자도 증언을 시작했다.
원전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우려하기 시작했으며, 샌 오노프리원전의 격납용기를
설계한 수석엔지니어가 "격납용기는 입지조건에 견딜만한 설계가 아니다. 40년수명이 되면
바로 폐로해야 한다. 20년 연장가동은 인정돼선 안된다."라고 현지 시의회에서 발언했다.
"샌 오노프리원전과 관련한 심각한 사태가 널리 주민에게 알려지게 됐다."(존슨씨)고 한다.
또한 일본으로부터 후쿠시마 원전사고후에 피난해온 2 가족에 의한 시의회 발언도
의원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존슨씨 등 주민의 운동에 의해 LA시를 포함한 현지 지자체 의회가 잇따라 재가동에 반대를
표명했다. 연방상원 환경공공사업위원회에서도 주민을 지지하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존슨씨에 이어 강연한 야스코씨는 NRC위원장으로서 원자력규제행정의 책임자를 지낸
인물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3월17일에 주일 미국대사관은 주일 미국인에게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80km권밖으로 피난할 것을 권고했는데, 그때 데이타를 분석해서
조언한 것이 야스코씨가 이끄는 NRC였다.
←시민에 의한 행동의 중요성을 호소하는
그레고리 야스코 전직NRC위원장
그 야스코씨의 눈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어떻게 비쳤는가. 또한 어디에 문제가
있었다고 야스코씨는 보고있었는가.
야스코씨는 일련의 사고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로서 "피난계획이 극히 취약했다."
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1979년에 일어난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의 교훈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그 중요한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16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던 고향을 떠나야만 했으며,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라고 야스코씨는 힘주어 말했다.
야스코씨는 2012년8월에 원전사고의 피난지시구역을 방문해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피난주민들의 체험담을 들었다.
야스코씨에 의하면 "미국에서도 원전의 안전성은 극히 취약했다."고 한다.
후쿠시마 사고후에 NRC는 태스크포스를 설치하면서 안전시스템의 취약성을 밝혀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알게 된 것이 "외적인 사고나 재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던
것이었다."고 야스코씨는 말했다. 야스코씨는 작은 지진에조차 대비가 없었던
원전의 실태를 그 예로 들었다.
시민의 행동이 원자력행정을 바꾼다
야스코씨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고, "새로운 원자력의 안전에 관한 기준을
다시세워야 한다."고 결심했는데, 대담한 규제강화에 반대하는 여타 NRC위원과의
대립이 심해져서 위원장직을 사임하게 됐다. 2012년5월이었다.
"새로운 기준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어떠한 사고이건
단 한사람이라도 피난하게 되는 사람이 나오는 사태에 빠뜨려서는 안되며,
원전부지밖이나 바다가 오염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일본의 비극으로부터 배울
기회를 살려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에너지정책, 안전기준을 실시해야할 필요가 있다."
고 야스코씨는 힘주어 말했다.
게다가 야스코씨는 시민에 의한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시민이 행동해야 한다. 시민 여러분은 정치가를 움직이도록 할 책임을 지고있다.
그리고 존슨씨가 (캘리포니아 주민운동으로)보인 것은, 곧바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