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이 도쿄전력을 제소한 소송에 대해서, 미국 인터넷신문 The Huffington Post가
초기부터 보도하더니, 오랜 경력의 저널리스트 Roger Witherspoon에 의한 글을
시리즈로 게재하고 있다. 그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된 것을 인용하는 형식이다.
도모다치 작전 당시의 미군측 상황을 자세한 취재로 쓰고 있어서,
궁금한기도 했던 그들의 속사정이 엿보인다.
전체 글은 Part.4까지 있다.
◇◇◇◇◇◇◇◇◇
2013.1.31 Energy Matters(Blog) by Roger Witherspoon(Journalist) A Lasting Legacy of the Fukushima Rescue Mission: Part 1 Radioactive Contamination of American Sailors (2013.2.1 Huffington Post에도 게재) 도모다치 작전의 후유증 Part1. 미 해군의 방사능오염 미 국방성은 후쿠시마 사고원전이 방출하는 방사성물질로 인해, 일본내 주류하는 7만명 가까운 미군, 정부직원, 그 가족, 기타 관계자들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전대미문의 그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이 시점에서 그들의 등록 데이타를 갱신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일본내 63곳 기지나 군사시설에 배치된 해병대, 육군, 공군, 공병대, 해군, 그리고 일본에서 사는 가족들에게, 장차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후쿠시마 원전사고와의 관련을 증명할 기록이 갖춰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동시에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 Ronald Reagan호 승무원 수천명의 해군과 해병대 에게도, 장차 방사선 피폭에 따른 건강장해가 발생할 경우에, 후쿠시마 원전사고와의 관련성을 증명할 공적기록이 작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7함대 소속인 이들은 남태평양에서의 임무를 뒤로하고,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전개할 "도모다치 작전"을 위해, 태평양을 북상했다. 이 작전은 거대지진과 거대 쓰나미가 동북지방 태평양 연안에 괴멸적인 피해를 야기하고, 2만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상황에서, 80일간에 걸쳐, 인도적 입장에서 구원활동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구원활동은 일본정부의 요청으로, 미국 국무성, 국방성, 원자력규제위원회, 에너지성에 의한 조정을 거쳐, 실시됐다. 이들 함대는 5,500명이 타고있는 항모 Ronald Reagan호, 4척의 구축함 Preble, McCampbell, Curtis Wilbur, McCain, 그리고 순양함 Chancellorsville, 기타 몇척의 함선으로 구성돼있다. 도모다치 작전에 참가한 지상의 트럭부대 운전병들과 헬기 승무원, 항모 탑재 항공기, 상륙정까지 이들은 모두 끊임없이, 방사능 구름이 어디로 흐르는지 파악해서,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여러 이유로 인해,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국방성 관계자의 증언과 기록에 의하면, 오염돼버린 해역을 항해하면, 피폭과 오염을 피할 수 없으며, 후쿠시마 주변에서 헬기를 날리면, 곧바로 방사능 구름속으로 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일은 터지고 말았다. 도모다치 작전에 참가한 장병들 중에 150명의 남녀가 수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갖게 되었다. 이 작전에 참여하여 방사선 피폭한 뒤로, 종양, 손발의 떨림, 내출혈, 탈모 등의 증상을 호소하게 됐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발생한 상황에 대해, 미 해군측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후쿠시마 사고원전으로부터 방출되는 방사성물질의 확산상황에 대해, 미국측에 허위보고를 했다며, 도쿄전력을 상대로 소송을 일으킨 것이다. 그와 동시에 방사선 피폭에 관한 공적 기록을 말소한 국방성도 고발했다. 항모 Ronald Reagan호의 항해사로서, 조타담당 Maurice Enis와, Jaime Plym의 설명에 의하면, 해상임무는 명확히 구분돼있다. 당시 항모 갑판에서 측정된 방사성 핵종의 양이 위험한 수준에 달해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해류가 얼마나 많은 양의 방사성물질을 흘리고 있는지 아는 자는 전혀 없었다. 경보가 울리고서야 비로소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됐다. Jaime Plym "함내에서 쓰는 물은 탑재된 탈염장치로 만든다." 플로리다주 St. Augustine 출신 28세 Plym이 설명한다. "물은 바다에서 퍼올리는데, 알다시피 바다가 오염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퍼올린 물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몇번이고 오염제거작업을 한다." "원자력항모는 원자로를 탑재하고있으며, 물로 냉각한다. 항모의 원자로를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방사성물질로 오염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오염을 피하기란 쉽지 않았다. 일단 오염된 해류가 없는 먼곳까지 퇴각하고, 거기서 배관이나 기타부분에 묻은 방사성물질을 씻어내고, 그뒤에 다시 오염이 적은 해역을 골라서 일본연안에 접근하는 수밖에 없었다. Maurice Enis "우리는 항해도에서 오염된 해역을 확인했는데, 그런곳을 뚫고 항해하는 것은 골치를 썩히는 일이었다." Enis가 말한다. "그러나 민간선박들은 그럴수도 없었다.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는 안전한지, 그들은 입소문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좀더 알고는 있었다 해도, 그당시에도 도쿄전력으로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만 듣고 있어서, 실제로 얼만큼의 방사성물질이 방출되는지, 제대로 알수 없었다." "우리는 약80일간 머물렀다. 일본 해안선에 3km 거리까지 접근했다가, 다시 멀어지곤했다.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에 따라, 술래잡기 같았다. 우리는 구원을 필요로하는 일본인들을 돕기 위해, 매번 되돌아왔는데, 그러다가 우리는 위험한 지역에 가게 됐다. 처음으로 위험을 겪을 때, 도쿄전력은 방사선 우려가 없다고 전하고 있었으나 , 우리는 방사선을 확인하고는 대피했고, 항시 가스 마스크를 휴대하게 됐다." 방사선에 관한 정보는 해상과 마찬가지로 육상에 있던 미국인들에게도 때마침 파악됐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Gregory Jaczko 위원장은, 모든 미국인이 후쿠시마 사고원전 80km권밖으로 피난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원전 남쪽 약300km 요코스카(横須賀) 미 해군기지에서는, 환경 방사선량이 상승해대는 것을 보고, 국방성이 여성과 애들을 요코스카로부터 피난시켰다.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극히 곤란했고, 사태는 일본의 관료체질 때매 악화되기만 했다. UCS(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참여과학자 모임)의 핵전문가 2명, 즉 원자력규제위원회와 업계의 컨설턴트 D. Lochbaum과, 핵물리학자 Ed Lyman은, 시시각각 정보가 쌓이는, 혼돈된 상황중에 방대한 양의 정부기관 이메일과 교신기록을 체크했다. "폭발후의 4호기에서는 사용후연료수조에 충분한 물을 확보하지 못하게 됐다." Lochbaum이 말했다. "그래서 미군은 호주에 있던 콘크리트펌프 트럭을 멀리 일본 동북지방의 미공군기지까지 공수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 트럭이 일본의 도로를 달리는 허가가 없다고 해서, 그들이 처한 엄청난 문제앞에서, 우선순위가 잘못된 꼴이었다." "일본의 문화는 교향곡에 가까운 듯하다. 모두가 지휘자를 따른다. 이에비해 미국사회는 재즈 앙상블에 가깝다. 모두가 함께 연주하지만, 즉흥연주를 중시하니까." 일본측으로부터 통합되고 신뢰성있는 정보를 얻을 수 없어서, 미국이 행하는 구원활동에 큰 지장이 됐다. Michael Sebourn 후쿠시마 남쪽 약200km 아쓰기(厚木) 미공군기지의 헬기부대 상급주임 정비사 Michael Sebourn은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진과 쓰나미가 덮친 후, 우리는 센다이와 후쿠시마에 구원활동을 하기위해, 아오모리현 미사와(三沢)기지로 하루만에 이동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리고 우리 이외의 전부대는 괌으로 피난했다. 그 단계에서 아쓰기 기지는 폐쇄되고, 두번다시 쓰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가용에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남기고 가도록 지시받았는데, 두번다시 자기 차를 가지러 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사와 기지에 3주반 머물며, 하루도 쉬지않고 일했다. 출동에 이은 출동, 그 반복속에서 우리 부대는 피해자 구출, 수송, 구원물자 공급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곳엔 몇몇 핵기술자가 있어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병사마다 피폭선량을 스캔했다. 전투복을 잘라내야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Sebourn은 3일간 괌에 파견되어, 집중훈련을 받고, 방사선 담당자로 임명되었는데, 그 임무도 쉬운 게 아니었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방사선에 대처하는 임무라니, 보고듣는 모든 게,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미 화학전, 생물학전에 대처하는 훈련을 받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방사선에 대처하는 훈련은 받은 적이 없었다. 핵무기 전문부대가 별도로 있는데, 우리는 그런 부대의 경험도 없었다. 공군쪽에는 방사선에 대처하는 경험을 가진 자는 없었다. 방사능오염된 항공기를 다루어본 경험 따위,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한치앞도 보이지않는 가운데 날아가는 격이었다." Sebourn이 소속된 정비사 그룹에는 규칙이 있었다. 귀환한 헬기는 모두 방사선량 스캔을 하고, 오염된 부품은 떼어내어, 격리된 전용 컨테이너 물속에 담글 것, 미사와 기지에 눈이 오기 시작해서, 부대는 거리상으로 후쿠시마에 가까운 아쓰기 기지에 되돌아오게 됐다. 그 사이 Sebourn은 변화하는 CCPM(Corrected Counts Per Minute) 단위의 방사선량을 추적했다. "평소 외부 방사선량은 5~10CCPM이다. 그것은 주로 태양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가 말했다. "아쓰기 기지의 배경 방사선량은 200~300CCPM 이었다. 온통 맛이갔다. 물에서도 방사능, 땅에서도 방사능, 공기중에서도 방사능이었다." "규칙에서 500CCPM 넘는 물건이 잇으면, 전용 장갑을 착용해야한다. 1,000cpm을 넘을 경우에는 방호복을 착용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5,000cpm을 넘으면, 완전무장을 해야한다. 방호복, 방독면, 고글에다 장갑을 2중으로 해야한다." "오염된 라디에이터를 다시 헬기에 장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교환해야만 한다. 나는 60,000CCPM 나온 라디에이터를 떼낸 것을 기억하고있다." 그러나 마침내, 방사선 방호장비가 부족해지는 사태에 처하게됐다. "도모다치 의료기록(The Tomodachi Medical Registry)"은 Vermont주 상원의원이자, 퇴역군인문제위원회 위원장 Bernie Sanders에 의해 발의되어, 약2년에 걸쳐 국방성, 에너지성, 퇴역군인원호국이 편찬하여 2012년말에 완성됐다. https://registry.csd.disa.mil/registryWeb/Registry/OperationTomodachi/DisplayAbout.do 그것은 철저한 조사기록으로서, 후쿠노빌 1호기~4호기가 몇달에 걸쳐 대기중과 바다에 방출한 방사성물질, 특히 방사성요오드와 세슘에 피폭된 후에 장기적인 영향이 있었는지 판단하는 의학적 근거를 만들기위한 것이다. 도모다치 의료기록은 유례없이 깊이있는 자료가 됐다. 국방성이 방사선 피폭선량을 조사한 252페이지 부분을 보면, 피폭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7만명의 미국인의 피폭선량을 산출했는데, 후쿠시마 사고원전과의 거리를 포함해, 담당업무와 관련한 호흡속도, 기상변화, 성별, 신체조건별, 연령별, 등의 여러 요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애들 항목에선, 피폭민감도가 다른 6단계 연령별로 분류했다. 나아가, 도모다치 의료기록은 "8천명 이상에 대해 내부피폭 방사성물질량을 조사한 결과와, 산출한 피폭선량을 비교했다"고 한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국방성은, 전신 및 갑상선의 최대피폭선량 산출값이 추가검사를 해야할 만큼 심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해군 대변인 Matthew Allen 대위는, 서면으로 이하와 같이 전했다. "국방성은 산출한 피폭선량의 정확성에 대해 크게 자신하고 있다. 매우 신중하게 노출조건을 설정한 결과다. 즉 방사선량이 올라간 환경에서 60일간 하루24시간 실외에서 생활하며, 호흡은 평소보다 많은 경우를 설정한 것이다." "산출한 피폭선량에 대해, 퇴역군인문제위원회(the Veterans’ Advisory Board on Dose Reconstruction)의 방사선피폭 전문위원, 그리고 전국 방사능방호측정위원회(the National Council on Radiation Protection and Measurements)에 의한 면밀한 검증이 있었다. 양측모두 계산방법은 적절하며, 결과는 정확하다고 인정했다. 또한 일본정부, 세계보건기구(WHO)의 계산결과와도 일치한다." 국방성 대변인 Cynthia Smith는 국방성의 결론으로서, 당시 심각한 오염은 없었다고 말했다. "2011년3월11일 또는 그후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사성물질이 방출된 일본본토 또는 인근지역에 있던 미군 관계자 중에서, 건강조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다." D. Lochbaum 그러나, 당시 일본에 있던 남성, 여성, 애들에 관해, 앞으로 계속적인 조사를 필요로 할만큼의 대량의 방사선은 방출되지 않았다고 하는 국방성의 일괄적인 결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방사능오염은 균일하게 퍼지는 게 아니다." Lochbaum이 말했다. "핫스팟과 저선량지역이 있는데, 자기가 고선량지역에 있는지, 저선량지역에 있는지 파악했던 사람은 없다. 개인별로 실제 피폭선량을 누가 알겠는가? 그들이 먹은 음식물의 방사선량을 측정하지도 않았다." "해군이 알고있는 몇몇 데이타를 토대로 모든 그룹에 대해 적용하는 조사방법은 현재 취할수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들은 많은 측정을 했지만, 그것은 한시점의 한지역을 나타낼 뿐이다. 야간에 플래시촬영하는 것에 빗댈수있다. 플래시를 터뜨릴 때마다, 한곳 한곳 촬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둠에 싸인 전모를 밝힐수 있겠는가?" (Part.1 끝) ◇◇◇◇◇◇◇◇◇ 이하 지도에서 아쓰기(厚木) 미군기지는, 후쿠시마에서 보면 도쿄 바로 다음이다. 아쓰기 미군기지가 온통 맛이갔다는 것은, 그 직전에 도쿄가 온통 맛이 갔다는 것.. 참고 링크↓ 2013.3.10 CBS news http://www.cbsnews.com/8301-18563_162-57573501/navy-vets-say-fukushima-meltdown-made-them-sick/ 2013.3.11 The Huffington Post http://www.huffingtonpost.com/2013/03/11/fukushima-navy-health-problems_n_285552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