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21C
21세기 헤쳐살기 ~ 생명과 환경과 에너지 그리고 재해 이야기
2013년 9월 29일 일요일
[메가퀘이크3-4]난카이(南海)트로프 ~ 보이기 시작한 조짐
2013.9.1 NHK special MEGAQUAKE III
난카이(南海)트로프 ~ 보이기 시작한 조짐
혼슈(本州)남쪽 100km. 지금 이곳에 일본의 지진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강한 음파를 내서 해저구조를 살피는 조사.
일본 밑으로 파고드는 판의 모습이 드러났다.
거대지진이 우려되는 난카이(南海)트로프다.
일본열도 직하에 펼쳐진 거대한 진원역.
이곳에서 꺼림칙한 진동이 빈발하고 있는 것을 알게됐다.
고성능 지진계가 지하 3,000m에서 그 진동을 포착했다.
몸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미약한 진동.
슬로퀘이크(Slow earthquake, slow slip)라는 지하의 움직임으로 생기고 있다.
보통의 지진과는 달리 미세한 진동이 오래 이어진다.
도카이(東海)에서 큐슈(九州), 지금 난카이트로프 주변에서 잇따라 발견돼고 있다.
"0시부터 24시까지 하루종일 끊임없이 특수한 지진이 발생했다."
2011년 거대지진 직전에 슬로퀘이크가 발생했던 것이 알려져서 주목됐다.
슬로퀘이크가 거대지진의 조짐이 아닌가.
지진학자 "다음번 난카이트로프 거대지진의 조짐이 포함된 것이 아닌가.
조금이라도 그 꼬리를 잡고싶다."
MEGAQUAKE 확실히 다가오는 난카이트로프 거대지진.
우리는 그 진정한 정체를 아직 모른다.
과학자들이 그 수수께끼에 도전하고 있다.
거대지진은 언제 일어날 것인가.
슬로퀘이크를 단서로 해서 읽어내려 하고있다.
최신기술이 드러내는 땅의 움직임.
일본의 지하에서 진행되는 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진학자 "확실하게 다음번 지진을 향해서 준비를 하고있다."
더구나 새로운 이변도 드러났다.
난카이트로프 진원역이 넓어져서 도쿄쪽으로 가까워지는 우려가 있다.
도쿄만(東京湾)에 밀려드는 거대쓰나미. 지진발생후 단10분만에 도착.
피할 새도 없이 사람들을 덮친다.
쓰나미 연구자 "예상범위내에서만 대책을 취하면 괜찮다는 것은 위험하지 않은가."
최신과학으로 지진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MEGAQUAKE
난카이트로프에서 보이기 시작한 거대지진의 조짐을 파헤친다.
일본열도를 둘러싼 4개의 판.
그중 하나 필리핀해판은 육지판 밑으로 연간 수cm씩 파고들고 있다.
판이 파고드는 곳 난카이트로프.
그곳 일본열도 밑으로 파고드는 경계면에 거대지진을 거듭해온 진원역이 있다.
육지판은 파고드는 판에 밀려 변형을 쌓아가고 있다.
그 변형이 한계에 달했을 때, 육지판이 단번에 미끄러져서 거대지진이 일어난다.
(2012년8월)일본정부는 난카이트로프 거대지진을 가장 경계해야할 재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난카이트로프 거대지진 대책검토 워킹그룹 가와다(河田恵昭)주사
"국난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런 재해가 일어나려 하고있다."
예상되는 지진규모는 최대 M9.1
도카이에서 큐슈에 걸친 각지에서 진도7의 극심한 흔들림이 덮친다.
태평양 연안에는 10m를 넘는 거대한 쓰나미가 밀어닥친다.
일본 3대 도시권 중에 나고야(名古屋)와 오사카(大阪)는 도시기능이 마비된다.
최악의 경우 사망자 32만명. 일본전체가 위기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난카이트로프 거대지진은 지금까지도 되풀이돼왔다.
1946년 쇼와(昭和)난카이지진 M8.0
"50톤 가까운 어선이 해안에서 수km 떨어진 도로위에 밀려와서,
쓰나미의 엄청난 위력을 보이고 있다."
67년전 쇼와 난카이지진이 난카이트로프에서 발생한 마지막 거대지진이다.
당시는 전쟁직후 혼란기여서 다음번 지진에 이어지는 과학적 자료는
거의 남겨져 있지 않다.
확실하게 다가오는 거대지진. 최신기술을 구사해서 그 조짐을 잡을 수는 없는가.
일본내 800곳에 정비된 지진관측망.
지하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미약한 진동을 고감도 지진게가 잡아낸다.
그 파형을 단서삼아 거대지진의 조짐을 잡으려하는 과학자가 있다.
도쿄대학 지진연구소 오바라 가즈시케(小原一成)교수다.
난카이트로프 연구를 오래해온 오바라교수.
13년전 고감도 지진계 파형속에서 의문의 진동을 발견했다.
오바라교수 "얼핏보면 보통 노이즈처럼 똑같이 보이는데,
이걸보더라도 4분정도는 계속되고 있는 걸 알수있다."
파형을 분석했더니 의문의 진동은 보통의 지진과는 크게 달랐다.
보라색의 지진 파형은 즉시 흔들림이 커지고 점차 가라앉는다.
한편 푸른색은 의문의 진동인데 얼핏 파형이 직선처럼 보인다.
그러나 1,000배 확대하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수있다.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미약한 흔들림. 며칠 내지 몇주에 걸쳐 계속되기도 한다.
오래 계속되는 의문의 진동. 그것을 만들어내는 지하의 움직임이 슬로퀘이크
라 불리고 있다.(역주: 주로 Slow earthquake, Slow slip 이라 불림)
슬로퀘이크는 어디서 발생하고 있는가. 분석결과 노란점 하나하나에서 발생했다.
붉은색은 과거에 일어난 거대지진 진원역이다.
깊이 5km ~ 40km 지하에서 진원역을 둘러싸듯이 슬로퀘이크가 발생하고 있었다.
오바라교수 "지하에서 뭔가 발생했을거라 생각은 했는데, 진원역을 둘러싸서
발생한 것을 보니 거대지진과 관계있는 게 아닌가."
그뒤로도 슬로퀘이크는 관측돼왔다. 그러나 거대지진과의 관계는 좀처럼
알아내지 못했다. 슬로퀘이크는 어떤 것인가. 오바라교수의 견해다.
보통의 지진은 육지판에 변형이 쌓여서 한계에 달하면 단번에 미끄러진다.
한편 슬로케이크는 변형이 쌓인 육지판이 서서히 미끄러지는 현상이다.
이런 느린 움직임 때문에 생기는 흔들림은 극히 미세하다.
이것이 의문의 진동이었던 것이다.
슬로퀘이크는 판에 쌓인 변형을 조금씩 해방시키고 있다.
그래서 오바라교수는 큰지진을 오히려 일어나기 어렵게 한다고 생각했다.
오바라교수 "에너지를 쌓이지 않게 하는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인간에게 직접 영향주지 않으면서 변형을 해소해준다.
우리한테는 매우 고만운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2011년3월11일 동일본대지진) 동북지방 앞바다에서 발생한
M9 거대지진 직전에도 슬로퀘이크가 발생했던 것을 알게 됐다.
규명한 것은 도호쿠(東北)대학 이토 요시히로(伊藤喜宏)교수다.
대지진 4개월전에 동북 앞바다 해저에 지진계를 설치했었다.
지진 뒤에 얻은 데이타에서 자세한 내용이 밝혀졌다.
슬로케이크 진동은 대지진 한달이상 전부터 발생해서, 대지진 직전까지 계속됐다.
이토교수 "아마도 슬로슬립에 의한 지각변동이라 생각되는데, 그런 것이
진행됐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변형을 해소하고 있을 줄 알았던 슬로퀘이크 직후에 왜 대지진이 터졌는가?
분석결과 새로운 사실이 떠올랐다.
슬로퀘이크가 발생한 것은 대지진 진원의 동쪽. 마찬가지로 판경계였다.
한달이상 계속된 슬로케이크. 그로인해 판이 움직인 거리가 약40cm에 달했다.
이토교수는 이런 판의 큰 움직임이 대지진 트리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뭔일이 생겼는가.
육지판 밑으로 파고드는 해양판.
그 경계면에는 넓게 밀착된 어스패러티(Asperity)라 불리는 곳이 있다.
그 어스패러티가 대지진 진원역이다. 오랜 기간동안 변형을 축적해왔다.
한편 어스패러티 주변에는 드문드문하게만 붙어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는 변형이 쌓일 때마다 판이 조금씩 미끄러진다. 이것이 슬로케이크다.
이 움직임에 의해 판경계의 변형은 조금씩 해소된다고 생각됐었다.
그러나 동북 앞바다에서는 슬로케이크가 한달이상 계속되고 판이 40cm나 움직였다.
한계까지 변형을 축적했던 어스패러티는 슬로케이크에 끌려가듯이 단번에 미끄러졌다고
이토교수는 보고있다.
슬로케이크와 거대지진의 관계를 모형으로 재현했다.
위쪽은 육지판, 아래쪽은 해양판이다.
왼쪽은 넓게 밀착된 어스패러티, 오른쪽은 슬로퀘이크가 일어나는 드문드문 붙은곳이다.
해양판이 일정한 속도로 파고든다. 이런 움직임을 위에서 본다.
왼쪽 어스패러티는 넓게 밀착된 채로 있다.
한편 오른쪽은 드문드문 붙은 부분이 조금씩 미끄러진다. 슬로퀘이크다.
이런 움직임이 오래 계속되면 어스패러티가 오른쪽으로 당겨져서 판전체가 미끄러졌다.
노란색 슬로퀘이크의 움직임은 동북 앞바다 해저에서 남북 약100km에 걸쳐서
발생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대규모의 움직임이 거대한 어스패러티를 단번에
움직이게 했다고 보인다.
이토교수 "이번에 중요한 것은 실제로 관측됐다는 것.
지진이 유발되는 일련의 현상을 포착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지진 발생의 관계를 다시한번 재검토하야 한다고 느꼈다."
난카이트로프에서 슬로퀘이크를 발견한 오바라교수.
슬로퀘이크 직후에 거대지진이 발생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어떤 경우에 슬로퀘이크는 거대지진으로 이어지는가.
진원역이 육지에서 먼 동북 앞바다에서는 슬로퀘이크 관측데이타가 거의없다.
한편 난카이트로프는 육상에서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어서 10년이상의 데이타가
축적돼있다. 그 데이타를 자세히 분석했더니, 슬로퀘이크에 발생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예를들어 미에(三重)현에서는 슬로퀘이크가 반년마다 발생해서 열흘정도 이어진다.
시코쿠(四国)에서는 약 석달마다 발생해서 일주정도 이어진다.
지역에 따라 발생주기와 기간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 패턴에 변화가 없는지, 그것을 감시해 나아간다면, 거대지진의 조짐을
잡을 수 있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오바라교수 "역시 다음번 거대지진이 오기전에 슬로퀘이크에 뭔가 변화가
있을법하다. 그 발생패턴의 변화를 포착하고자 한다."
동북 앞바다 거대지진으로 쓰나미 피해를 당한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仙台市若林区).
오바라교수는 이곳에서 나고자랐다. 그날을 잊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연구하고 있다.
오바라교수 "그 재해를 막기에는 완전히 무력했다는 것이 나로서도 충격이랄까,
견디기 힘든 마음이었다. 내가 공헌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진행중인 슬로퀘이크
연구를 통해 거대지진 발생을 예측하는 것밖에 없다."
지금 세계 과학자들이 슬로퀘이크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슬로퀘이크가 확인된 것은 10곳이다.
뉴질랜드, 멕시코, 알래스카 등 모두 거대지진이 우려되는 곳이다.
그중 하나 미국 서해안 시애틀. 2012년 슬로퀘이크 패턴에 변화가 나타나서
긴장이 고조됐다. 슬로퀘이크가 발생하고 있는 곳은 서해안 판경계
캐스캐디아(Cascadia)다. M9급 거대지진이 우려되고 있다.
도시를 덮치는 극심한 흔들림. 연안지역은 그 직후에 거대 쓰나미에 삼켜진다.
슬로퀘이크 발생패턴에 주목해서 연구해온 Herb Dragert박사(캐나다 지질조사국,
Geological Survey of Canada)다.
이곳에서는 슬로퀘이크가 연간1회 발생해서, 약3주간 계속된다는 것이 알려져있다.
Dragert박사 "슬로퀘이크는 평소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변화했을 때 주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거의 규칙적으로 발생해온 슬로퀘이크.
2012년 그 패턴이 크게 무너졌다.
2012년8월말에 시애틀 북쪽에서 시작되어 남북 600km에 확대,
3주를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던 것이다.
거대지진이 닥친 것은 아닌가. 서해안에 긴장감이 돌았다.
미국 공영라디오(2012년10월) "지금 슬로퀘이크가 5주간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슬로퀘이크는 일본에서 일어난 거대지진 직전에도 발생했던 것이 확인됐다.
전문가에게 듣는다. (전문가) 벼랑끝에 있는 차는 살짝 밀어도 떨어진다.
슬로퀘이크는 마지막 미는 것이 될 수 있다."
Dragert박사 "점점 확대돼서 우리는 주목했다. 도대체 언제 멈추나 긴장했다."
평소의 2배인 6주간 이어진 슬로퀘이크. 그러나 갑자기 멈추고 수습된 것이다.
슬로퀘이크 패턴은 왜 변화했는가. 왜 거대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는가.
Dragert박사는 이번 슬로퀘이크가 진원역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Dragert박사 "슬로퀘이크와 거대지진의 관계는 아직 분명치않다. 그러나
관계는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거대지진으로 이어지는지 밝히고자 한다."
다음번 거대지진의 약간의 조짐을 읽어내려는 연구자들의 도전.
지금 슬로퀘이크 분석과 함께 유력한 수단으로 여겨지는게 GPS(전지구측위시스템)다.
일본내 관측점은 1,200곳. 인공위성을 써서 땅의 미세한 움직임을 1mm단위로 기록한다.
GPS가 포착한 땅의 움직임. 난카이트로프 동쪽, 관동 남쪽 해저에서 판이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게됐다.
난카이트로프에 파고드는 필리핀해판에 얹혀있는 이즈제도(伊豆諸島) 섬들은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이즈반도(伊豆半島)는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판에서 왜 서로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이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연구자가 있다. 고치(高知)대학 다베이(田部井隆雄)교수다.
그가 향한 곳은 이즈반도 남쪽 80km에 있는 제니스(銭州)라 불리는 암초다.
필리핀해판 위에 있는 이 암초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조사하기로 했다.
휴대용 GPS관측기로 측정한다. 그결과 제니스가 움직이는 방향은 서쪽이었다.
이즈반도와 같았다.
난카이트로프와 맞닿는 서쪽부분이 넓게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다베이교수는 판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북쪽으로 움직이는 부분과 서쪽으로 움직이는 부분 사이에 판이 깨져있다는 것이다.
다베이교수 "이곳이 기존에 판경계로 생각되던 곳이다. 그런데 또하나의 경계가
이쪽에 있다. 지금 생겨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되고 있다."
왜 판이 깨지는가. 그 이유는 이즈반도 때문이라고 다베이교수는 생각한다.
필리핀해판에 얹혀있는 이즈반도가 육지판에 부딪혀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뒤에서 계속 밀려오는 필리핀해판의 힘에 견디지 못해, 균열이 생긴다.
그곳을 새로운 경계로 해서 판이 파고들고 있다고 다베이교수는 생각한다.
판의 새로운 경계는 난카이트로프 동쪽 약50km.
거대지진의 진원역이 동쪽으로 확대되어 도쿄쪽에 가까워진 가능성이 있다.
다베이교수 "새로운 판경계가 생긴다는 것은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발생하면 거대 쓰나미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진원역이 동쪽으로 확대되면, 관동지방을 덮칠 쓰나미가 더 빨리 도착할 우려가 있다.
쓰나미의 메카니즘을 연구하는 도코하(常葉)대학 아베 이쿠오(阿部郁男)준교수가
시뮬레이션했다.
일본정부가 예상한 기존의 진원역에서 쓰나미가 발생할 경우, 관동지방을 덮치는
쓰나미 높이는 10m 이상. 1시간여만에 도착한다고 한다.
한편 동쪽으로 50km 확대되어 관동지방에 가까워진 진원역에서 M8급 거대지진이
발생하면..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藤沢市)나 가마쿠라시(鎌倉市)에는 높이 10m
쓰나미가 단14분만에 밀어닥친다. 쓰나미는 간선도로를 따라 시 중심부로
피할 새도 없이 덮친다. 연안 시가지는 대부분 침수된다.
지진발생 45분후 가나가와 가와사키시(川崎市). 쓰나미는 도쿄만에도 흘러든다.
높이 약3m. 기존의 예상보다 30분이상 빨리 도착한다.
관동 연안에서는 쓰나미가 빨리 도착함으로써 피해가 커질 우려가 있다.
아베교수 "자연은 여전히 모르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상했다고 해서 예상범위내에서
대책을 취하면 전부 괜찮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떠오르는 난카이(南海)트로프 거대지진의 위협.
지금 GPS를 사용한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교토(京都)대학 지진예지연구센터 니시무라 타쿠야(西村卓也)교수다.
난카이트로프에 쌓이는 변형의 크기, 슬로퀘이크에 의한 땅의 움직임,
이 두가지를 정확히 산출해서 지진을 예측하고자 하고있다.
화살표는 해양판에 밀리는 육지의 움직임이다. 화살표가 길수록 강하게 밀리고있다.
GPS로 관측하면 바다쪽에서 밀리는 힘의 크기를 알수있다.
크게 밀리는 곳에서는 판끼리 밀착된 채로 움직여서 변형이 쌓여있다.
화살표 길이에 따라 어디에 얼만큼의 변형이 쌓였는지 알수있다.
이런 분석을 통해 난카이트로프 거대지진 진원역에서 특히 변형이 쌓인 곳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다. 붉은색 강한 변형이 시코쿠(四国) 남쪽에 쌓인 것을 알게됐다.
나아가 니시무라교수는 슬로퀘이크에 의한 땅의 움직임도 GPS로 자세히 분석했다.
때때로 짧아지는 화살표, 그때 슬로퀘이크가 일어나고 있다.
왜 화살표가 짧아지는가. 평소 바다쪽으로부터 밀리고 있는 육지.
슬로퀘이크가 발생할 때, 반대로 바다쪽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때문에 화살표가 짧아지는 것이다.
2007년 슬로퀘이크가 발생한 아이치(愛知)현. 화살표가 짧아진 것을 알수있다.
2008년 미에(三重)현에서도 마찬가지로 짧아졌다.
그리고 니시무라교수는 간과할수없는 큰 변화를 발견했다.
그것은 시코쿠에서 발생한 최대규모 슬로퀘이크다.
2006년9월 시코쿠 서부에서 슬로퀘이크가 발생, 땅이 하루만에 1.3cm 바다쪽으로
움직였다. 한달뒤 시코쿠 중앙부에서 하루만에 1cm, 또다시 한달뒤 시코쿠의
동부에서도 하루만에 1.4cm 움직였던 것이다.
하루의 움직임으로는 전례없던 크기였다.
변형이 가장 많이 쌓여있는 진원역의 바로 근처에서 땅이 크게 움직였던 것이다.
이 움직임이 더 진행되면 거대지진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쌓여가는 변형과 슬로퀘이크에 의한 땅의 움직임.
니시무라교수는 이 두가지의 변화에 대한 감시를 계속함으로써 거대지진의 조짐을
잡아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니시무라교수 "확실하게 다음번 지진을 향해서 지진의 준비하고 있다.
여러 사례를 축적해가다가 그 구별을 만약에 할수있다면, 그것은
지진 예지, 예측에 유익한 정보, 상당히 결정적인 정보가 될 수 있다.
그것을 앞으로도 열심히 연구해 가고자 한다."
"해저 지각변동을 관측하러 출항한다."
다음번 거대지진은 언제 일어날 것인가. 그 단서를 찾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해상보안청은 난카이트로프 주변 해저에 GPS관측점을 잇따라 설치하고,
판의 움직임에 이변이 없는지,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연간 약4cm 북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상당히 큰 이동량이다."
와카야마 히다카쬬(日高町)
최신과학과 과거기록을 조합해서 지진의 조짐을 포착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주목한 것은 67년전 거대지진 전에 일어난 우물물의 이변이다.
"두레박 줄이 닿지않아서 잇고, 또 이어야할 정도로 물이 줄었다."
거대지진 전에 이변이 발생한 우물은 그밖에도 15곳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슬로퀘이크에 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거대지진 직전에 슬로퀘이크가 빈발해서, 지반이 미끄러져 지하수층이 펴지면서
우물 수위가 낮아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다음번 거대지진 전에도 또다시 이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일본전국 약60곳의 우물에서 감시를 시작했다.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우메다(梅田康弘)연구원 "지표에 나타나는 변화는 작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때 이 우물물이 얼마나 변화하는지, 계량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어떻게 그것을 잡아내는가. 어떻게 기회를 찾는가."
난카이트로프의 슬로퀘이크를 연구하는 도쿄대학 오바라교수.
슬로퀘이크가 일어나고 있는 곳을 추가로 규명했다.
그곳은 큐슈(九州) 남쪽 200km 난세이제도(南西諸島).
난카이트로프 남쪽끝이라는 해역보다 더욱 남쪽이다.
오바라교수 "난세이제도에 난카이트로프 지진이 뻗치는지 아닌지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아직도 숨어있는 거대지진의 단서가 있지않은지, 매일 모이는 방대한 데이타를 보고있다.
오바라교수 "뭔가 지구가 알려오는 시그널을 찾는 의미로 본다면 역시 기록을 하나하나
보는 것이 제일 먼저다. 99% 헛일이 돼도, 1%라도 뭔가 가치있는 것이 발견된다면,
이런 파형을 보는 의의가 있지않나, 생각한다."
MEGAQUAKE 거대지진.
일본은 그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지구가 던지는 약간의 싸인을 읽어내서 거대지진의 조짐을 포착할 수 있는가.
예지를 결집한 싸움이 계속된다.(끝)
2013년 9월 27일 금요일
[메가퀘이크3-3]되살아나는 관동대지진 ~ 수도궤멸·90년째의 경고
2013.8.31 NHK special MEGAQUAKE III
되살아나는 관동대지진 ~ 수도궤멸·90년째의 경고
도쿄만에 떠있는 인공섬.. 이곳에서 지금 다음번 도쿄를 덮치는 지진을 감시하고 있다.
초고감도 지진계로 미소 지진을 관측, 다음번 거대지진의 조짐을 잡으려 하고있다.
관동평야 지하에서는 동일본대지진 뒤에 지진횟수가 꺼림칙하게 증가하고있다.
도쿄대학 히라타(平田直)교수 "지진활동이 많아진 걸 생각하면, 슬슬 다음 관동지진,
광동대지진을 일으킨것같은 매우 큰 지진이 일어날 것도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90년전(1923년9월1일) 근대도시로 발전하던 도쿄에 M7.9 거대지진이 덮쳤다.
관동대지진이다.
왕실거처앞에 펼쳐진 오피스거리 도쿄 마루노우치(丸の内). 90년전의 귀한 영상이
남아있었다. 이곳은 화염에 휩싸여 사람들은 필사적인 소화활동을 하고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지 아사쿠사(浅草). 나카미세(仲見世)에 줄지어있던 점포가
모조리 불탔다.
밀집지역을 흐르는 스미다가와(隅田川). 많은 사람들이 불길을 피하려다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사망 및 실종자 105,000명. 일본역사상 최악의 지진재해였다.
그러나 어떤 흔들림이 거리를 덮치고 왜 많은 목숨이빼앗겼는지 아직 밝혀지지않은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실은 관동대지진은 과학적인 기록이 처음으로 남겨진 거대지진
이기도 했다. 귀한 기록을 남긴 것은 일본 지진학의 기초를 닦은 이마무라 아키쓰네
(今村明恒)였다. 대지진 전부터 지진을 대비해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함을 호소했었다.
"우리의 지진계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시. 좋다. 급히 분석결과를 일본정부에 보고해라."
그러나 이마무라가 남긴 기록은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져, 묻혀있었다.
일본은 과거에 몇번씩 지진을 겪으면서도 교훈을 살리지 못했다.
그것을 반성하며 과학자들은 과거의 지진이야말로 미래를 알수있는 단서가 된다며,
이마무라가 남긴 기록을 최신과학으로 풀어보려 하고있다.
도쿄대학 고우케츠 가즈키(纐纈一起)교수 "다음 관동대지진이 반드시 있을테니까
대비하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1923년 관동대지진을 자세히 조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관동대지진의 지진메카니즘을 해석한 결과, 장래의 리스크가 드러났다.
반복되며 10분간이나 계속되는 길고 극심한 흔들림. 진도7. 그 흔들림의 면적은
고베대지진의 20배 가까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도쿄직하에서 일어나는 지진의 진정한 무서움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만일 또다시 관동대지진이 발생하면, 도쿄에서 뭔일이 벌어지는가.
그동안 90년 사이에 새롭게 조성된 매립지와 주택가를 극심한 흔들림이 때린다.
도시화되고 인구집중된 것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피해가 예상되는 것이다.
최신과학으로 지진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MegaQuake
관동대지진의 실상을 되살려 지금도 도쿄직하에 숨어있는 위협을 살핀다.
MEGAQUAKE III 되살아나는 관동대지진 ~ 수도궤멸·90년째의 경고
관동대지진의 참상을 전하는 귀중한 영상이 남아있었다.
촬영한 것은 영국 카메라맨. 카메라를 천으로 둘러서 몰래 찍고 있었다.
대지진 직후 계엄령이 선포되어 도쿄는 군의 통제하에 있었다.
차를 타고 찍은 폐허가 된 길거리. 도쿄 츠키지(築地)다. 화면 멀리가 긴자(銀座)다.
이번에 세계각지에 남아있던 영상을 수집해서 분석한 결과,
알려지지 않았던 피해실태가 밝혀졌다.
아사쿠사(浅草)의 영상에는 당시 드물었던 고층건물 료운가쿠(凌雲閣)이
찍혀있었다. 원래 12층이었던 것이 8층밖에 없다. 그 위층은 붕괴된 것이다.
지진은 가나가와현에도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을 영상으로 알수있다.
2층목조건물은 1층이 짜부러졌다. 요코하마항에서는 매립해서 만든 안벽이 파괴되고,
액상화현상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가마쿠라, 鎌倉)도처에 사태가 나서 주택과 도로를 덮었다.
피해는 흔들림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시즈오카현 이즈, 伊豆) 다리에 걸려있는 큰 배. 쓰나미 피해흔적이다.
쓰나미는 해안선에서 약1km 내륙까지 밀어닥쳤다.
쓰나미 높이는 약9m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수도 도쿄. 피해를 확대시킨 것은 화재였다.
영상으로부터 수도권이 광범위하게 온갖 지진재해를 당했던 것을 알게 됐다.
이런 피해는 어떻게 초래된 것인가.
단서가 될 과학자의 귀중한 기록이 묻혀있었다.
이것은 관동대지진의 흔들림을 포착한 파형이다.
이 기록을 남긴 것은 도쿄제국대학 조교수 이마무라 아키쓰네였다.
이마무라는 일본의 지진학 선구자로서 지진예측에 생애를 바친 인물이다.
관동대지진보다 앞서 도쿄에 대지진이 덮친다고 예측하고, 경종을 울렸었다.
(도쿄제국대학 1905년 지진학연구실)
관동대지진보다 18년전, 당시 지진학은 걸음마 단계의 학문이었다.
뭐든지 암중모색하는 상태였다.
"이마무라 선생님, 뭘 하시는겁니까?"
이마무라 "뭐라니, 지진이 와도 넘어지지 않는 걸음걸이를 시도중이다.
지진학자가 여차할 때 움직이지 못해서는 일이 안되잔나."
(인류의 적 지진을 예지할 것)
오오모리 교수 "이마무라군, 대지진을 예측하는 조사는 순조롭게 진행중인가?"
이마무라 "물론입니다."
이마무라는 고문서 기록을 긁어모아 다음번 대지진이 언제 발생할지 예측하려고
하고있었다.
이마무라 "이번 조사로 떠오른 것은 도쿄의 대지진입니다.
확실한 기록이 남아있는 대지진은 한정돼있습니다. 최근에는 3번.
1649년(게이안, 慶安), 1703년(겐로쿠, 元禄), 1855년(안세이, 安政)
고작 200년 사이에 3번의 빈도로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지난번 지진으로부터 50년 지났습니다."
오오모리 교수 "그렇다면?"
이마무라 "가까운 장래에 또다시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되면 대참사가 벌어질 것은 분명합니다."
메이지(明治)시대 말기 도쿄는 급속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목조주택에 살고, 부뚜막과 숯불곤로가 쓰이고 있었다.
이마무라 "지금의 도쿄는 너무나 취약하다. 목조건물은 붕괴된다. 그뿐 아니다.
도처에서 대화재가 날 것이다. 도쿄는 괴멸상태가 된다.
예상되는 피해자수는 10만~20만명."
"그렇게나 많이?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마무라 "지진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손쓸 일은 있다."
지진에 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
이마무라는 당시 인기가 있던 잡지에 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이마무라의 논문은 본의 아니게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지진이 당장 닥치는 게 아니냐고 도쿄에서 도망치는 사람이 나타날 정도로
큰 소동이 된 것이다.
(당시 신문)이마무라 박사의 대지진습래설 ~ 도쿄시 대재해 예언
신문이 지진의 무서움만을 센세이션하게 전했기 때문이다.
오오모리 교수 "이마무라군, 당장 논문을 철회하라.
이 소동을 가라앉히려면, 대지진이 온다는 것을 부정하는 수밖에 없다."
이마무라 "그러나 그것은 대참사의 가능성을 호소하려고.."
오오모리 교수 "우리는 과학자다. 가능성이나 만일의 경우라는 발언을
세상에다가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이 지경인데 대지진이 온다고 단언할 수 있나."
"신문기자가 왔습니다."
"실례합니다. 이마무라 선생님, 대지진은 언제 옵니까? 설명을.."
오오모리 교수 "그에 관해서 교수인 내가 견해를 밝히겠다.
이마무라군의 설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말하자면 엉터리라 할수있다.
안심해주기 바란다.."
결국 상사가 부정함으로써 소동은 진정됐다.
'부설(浮説)' 매우 강한 표현으로 비판당한 이마무라는 연구자로서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끝장이네" "이걸로 만년 조교수에 그치겠지."
역경에서도 이마무라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마무라는 대지진에 대비해서 지진계를 서둘러 개발하고 있었다.
기존의 것보다 10배 강한 지진의 흔들림을 계측할 수 있는 성능을 추구했다.
"이정도로는 아직 대지진에 견디지 못해."
"다시 조정해 보갰습니다."
"대지진은 온다. 가까운 시일안에 반드시.."
(이마무라식 지진계)이마무라가 개발한 지진계는 도쿄를 비롯해서 일본전국
7곳에 설치됐다. 설치를 마친 것은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기 8개월전이었다.
이 지진계가 나중에 귀중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1923년7월) 대지진 2달전, 일본해군이 비행선을 써서 촬영한 영상이다.
잿더미가 돼버리기 직전의 도쿄 시가지를 상공에서 촬영한 유일한 영상이다.
막 개업한 도쿄역. 일본의 위신을 걸고 건축된 서양식 건물이었다.
마루노우치(丸の内)에는 이미 오피스빌딩이 늘어서있었다.
지진이 일어날 줄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스미다가와(隅田川) 주변의 밀집지역이다. 목조건물 지붕들이 빽빽히 들어서있다.
이 지역에서도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1923년9월1일(토) 정오직전 무더위가 남아있는 도쿄.
많은 집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저기압의 영향으로 때때로 강한 남풍이 불고 있었다.
그 논문발표로부터 이미 18년. 이마무라는 조교수인 채로 그날을 연구실에서 맞았다.
그리고 운명의 11시58분.
이마무라 "11시58분 진동을 확인."
처음에는 작은 흔들림이었다. 그러나 그후 상상을 초월하는 흔들림이었다.
"둘다 무사한가?" "무사합니다."
"속히 지진계를 확인하라!" "네"
"이쪽은 전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지진계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시, 좋다. 진원을 도출해낼 수 있겠나?" "어떻게든 될것같습니다."
"진원방향은?" "여기서부터 남서쪽 215도 방향"
"거리는?" "96km입니다."
"진원은 사가미만(相模湾)" "관동전역에 피해가 파급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급히 분석결과를 일본정부에 보고하라." "네"
"다시 흔들릴지 모른다. 다시한번 계측기를 준비해놓자. 서둘러."
이마무라의 지진계가 포착한 거대지진의 극심한 흔들림의 기록이다.
파형의 상하폭이 흔들임의 크기를 나타내고 있다.
가로축이 계속시간이다. 파형을 잘보면 진폭이 같은 채로 나오는데,
흔들림이 너무커서 바늘이 한계였던 것이다.
이것을 볼 때 강한 흔들림이 10분이상 계속되었던 것을 알수있다.
(기후, 岐阜 지방 기상대) 게다가 기후에 설치됐던 이마무라의 지진계도
흔들림을 포착하고 있었다. 그 파형에는 흔들림이 장시간 계속된 이유가 기록돼있었다.
처음의 흔들림, 즉 본진의 다음으로 이어지는 두개의 흔들림, 여진이었다.
본진의 3분뒤 및 4분반 뒤에, 둘다 M7급이었다.
이 여진이 흔들림을 오래 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지진학으로는 그이상의 지진의 특징을 파형으로부터 읽어낼 수는 없었다.
그후 90년. 관동대지진을 일으킨 지진의 메카니즘에 최신과학으로 달려드는 지진학자가
있다. 도쿄대학 고우케츠 가즈키(纐纈一起)교수다.
"다음 관동대지진이 반드시 있을테니까, 대비하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1923년
관동대지진을 자세히 조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것에 근거해서 다음번 관동지진이 어떤 지진일지 어느정도 예상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고우케츠교수는 흔들림의 전모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도 단서를 찾았다.
프랑스 동부지역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도쿄에서 약1만km 떨어진 이곳에도 관동대지진의 흔들림이 전해졌었다.
스트라스부르대학 지진관측소
이곳에 관동대지진의 파형이 지금도 소중히 보관돼있다.
일본에서 지진발생 12분후, 몸에 느끼지 않는 극히 약한 흔들림이 포착돼있었다.
스트라스부르대학 루이스 리베라교수 "진원까지의 거리를 계산해서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났음을 금새 알았을 것이다.
파형의 진폭을 보고 매우 큰 지진이었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조사결과, 파형의 기록은 세계각지에 남아있는 것을 알게 됐다.
고우케츠교수는 전세계에서 파형을 모아서 관측점마다 진원으로부터의 거리나
흔들림의 강도를 해석했다. 그리고 도쿄의 파형과 대조했다.
그 결과 지하 어디가 어떻게 미끄러져서 흔들렸는지, 진원역 전체의 모습을 알게 됐다.
진원역은 사가미만(相模湾). 지하에 길이 130km에 걸쳐있었다.
그곳은 일본열도 지하에 있는 두 판의 경계에 해당한다.
관동지방 지하에는 남쪽에서 필리핀해판이 파고든다.
그 위에 육지판이 얹혀있다.
판경계에 변형이 쌓여 한계에 달해, 단번에 미끄러지면서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관동대지진은 지구의 지각변동이 일으킨 판경계형지진이었다.
더구나 그것이 도시에 극히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전세계 데이타로부터 밝혀진 진원역의 움직임이다.
처음에 판경계가 미끄러진 것은 가나가와(神奈川)현 서부 지하 12km였다.
붉은색이 특히 강한 흔들림이 생긴 곳이다.
판경계의 미끄러짐은 약50초 걸려서 서에서 동으로 움직여갔다.
이번 해석을 통해,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관동각지의 흔들림 실태가 드러났다.
가장 흔들림이 심했던 것으로 보이는 곳은 가마쿠라(鎌倉).
진원역의 거의 한가운데에 위치해있다.
도대체 어떤 흔들림이었는가. 이번에 드러난 파형을 토대로 실험했다.
90년 세월을 지나 현대과학으로 비로소 재현된 관동대지진의 흔들림이다.
지진발생 18초후 심한 흔들림이 덮친다.
일단 가라앉은 줄 알았더니, 또다시 강한 흔들림..
흔들림 세기는 진도7. 고베대지진에 필적하는 심한 흔들림이 가마쿠라를 덮친 것이다.
흔들림이 심했던 것을 나타내는 피해모습이 영상에 남아있었다.
쓰루가오카 하치만구(鶴岡八幡宮) 등 역사적인 신사, 불당이 붕괴.
121톤이나 되는 대불상이 30cm 앞으로 움직였다.
이것은 관동대지진의 진도분포다.
진도7은 가나가와를 중심으로 도쿄, 사이타마(埼玉), 치바(千葉) 등에 퍼져있었다.
진도7의 곳을 붉은색으로 표시한다.
고베대지진과 비교하면 그 면적이 20배 가까이 된다는 것을 알게됐다.
먼바다에서 일어나는 수가 많은 판경계형지진.
그것이 도시직하에서 일어남으로써 엄청난 피해가 초래된 것이다.
고우케츠교수 "그야말로 직하형지진인 고베대지진과 같은 흔들림이 일어났다.
그게 실은 매우 넓은 면적에서 일어났다는 상태.
앞으로 닥칠 관동지진은 직하형 판경계지진이 될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마무라 아키쓰네가 남긴 귀중한 기록과 현대 과학자의 탐구.
그것이 장차 일어날 지진의 리스크를 드러냈다.
이마무라가 남긴 것은 지진의 파형기록만이 아니었다.
관동대지진의 피해에 대한 보고서 총6권. 1,800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이다.
사망 밒 실종자는 10만5천명. 그 90%는 화재로 사망했다.
그 피해실태를 이마무라 등은 낱낱이 조사햇던 것이다.
지진발생 6시간후, 대학에 잇던 이마무라는 피해의 크기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이마무라 "한시바삐 피해상황을 알아야겠다. 경찰에 아직 연락되지 않는가?"
"안됩니다. 전화가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마무라 "거리를 보고오겠다.. 왜그래?"
"선생님, 지금 밖에 나가면 안됩니다. 도쿄는 큰일났습니다."
옥상에 올라간 이마무라가 본 광경.. 그것은
이마무라 "불타고 있다. 도쿄가 불타고 있다.. 지금까지 뭣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즉시 논문을 철회해라.
도쿄는 괴멸상태가 될 것이다.)
이마무라가 18년전에 예측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지진발생 3일후, 이마무라 등은 연일 피해지역을 돌았다.
이마무라 "이런 참상이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난다고 알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그러나 이걸로 지진한테 졌다고는 생각하고싶지 않다.
지금 우리가 할수있는 일은 이 현실을 기록에 남기는 일이다.
장래에 반드시 그 기록이 방재에 도움될 것이다.
대지진과의 싸움은 이제 시작된 것이다."
이마무라 등이 남긴 보고서. 그속에 화재의 실태가 상세히 기록돼있다.
이것은 어디서 불이나서 어떻게 펴졌는지 기록한 지도다.
붉은점이 지진직후에 불난곳. 화살표는 불이 퍼지는 모습이다.
당시 도쿄시내에서는 화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불난곳은 134곳에 달했다.
칸다(神田)지역에서는 반경 200m 범위에서 10곳이나 불이났다.
그곳을 찍은 영상이 있었다.
지진발생 약1시간후, 대량의 연기가 시내전체를 덮을듯이 나오고 있었다.
왜 화재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이마무라 등이 남긴 기록과 영상을 대조분석해서 그것을 밝히려는 시도가 있다.
도시방재 전문으로 화재에 밝은 사이타마대학 니시다 유키오(西田幸夫)교수.
니시다교수는 영상에서 사람들이 피난하지도않고 화재를 바라보고있는 것에 주목했다.
니시다교수 "화재의 연소속도라는 것은 사람이 걷는속도보다 느리니까
불을 피하기만 하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있었다고 보인다."
이마무라 등의 기록을 토대로 화재가 퍼지는 모습을 재현한 지도다.
지진 3시간후, 강한 바람으로 화재는 급속히 퍼졌다.
화재가 확대된 장소중의 하나로 아사쿠사(浅草)의 영상이 남아있다.
그때는 이미 사람들이 화재를 보고있을 여유가 없어졌다.
옮길수있는 데까지 가재도구를 꺼내서 피난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많은 사람들의 피난행렬이 현성된다. 큰길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꼼짝못할 지경이 됐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군중이 피난할 때 앞길에 화재가 나면 피난방향이 한정되는데 그래도
뒤에서 사람들이 밀려오면 피난도 못하고 사망하는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각지의 광장이란 곳마다 모조리 사람들로 메꿔졌다.
그중에 위기에 처한 광장이 있었다. 그곳은 3방향으로부터 불이 다가왔다.
대지진 전의 광장 영상이다. 도쿄돔 1.5배 넓이에 4만명이 와있었다.
지진직후 그 광장에 피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몇시간후, 그곳에서 3만8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관동대지진의 희생자 3분의1에 해당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광장에 피난했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소녀가 있었다.
이치가와 후미코(市川ふみ子)씨 97세. 당시 7살이었다.
이치가와씨 "넓은 강가였다. 거기에 모두 피난했다."
광장에서 300m 거리에 살던 이치가와씨. 화재가 다가오자, 부모와 조모,
3형제와 함께 광장으로 향했다.
점차 주변 화재현장으로부터 불꽃이 날아오게 됐다.
그리고 작게 회오리치는 검은 바람이 다가왔다고 한다.
이치가와씨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웅~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교차로 저편에서
시커먼 연기가 (회오리치면서) 광장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이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진 당시의 상황이다.
불, 연기를 포함한 회오리바람이 사람이나 가재도구를 날려버리는 모습이다.
화재선풍(火災旋風)이라는 현상이다.
큰 화재가 일어나면 강한 상승기류가 생긴다. 거기에 옆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불꽃을 감싸듯이 바람이 흐르고, 부딪치는 곳에서 회오리가 생긴다.
이것이 점차 커지면서 토네이도같은 회오리바람이 발생한다.
이 화재선풍이 광장을 몇번씩 덮쳐서 그 일대가 불바다로 변한 것이다.
이치가와씨 "다들 불탈 때 회오리바람에 날려버렸다. 그러다가 밑에 떨어진
사람도 있고, 그대로 어디론가 날려간 사람도 있었다.
'사람살려'라고 외치면서, 불타면서 저쪽으로 날려간다.
여러명 봤다. 그런 것을.. 어제일처럼 생각난다. 무섭다."
이치가와씨도 가족과 함께 화재선풍이 날려졌다. 정신을 들었을 때
물웅덩이 속에 있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모와 3형제를 잃었다.
이 광장에서 사망한 3만8천명의 시체는 그자리에서 화장됐다.
이치가와씨 "우리집도 4명 사망해서, 뼈를 챙겨오려고 했는데,
많은 뼈 속에서 자기집 사람의 뼈를 알수없었다.
그래서 뼈는 포기하고, 집이 불탄 자리에 그릇조각이 있어서 챙겼다.
그래서 묘에 뼈는 없이 그릇조각만 넣었다."
화재선풍에 의해 피해가 확대되어, 도쿄는 시가지 40% 이상이 소실됐다.
이마무라 등의 보고서에는, 대지진에 의한 화재가 모든 방향에서 닥쳤다고
경고했다. (화재가 거의 동시에 여러방향에서 일어난다.)
그 교훈을 토대로 지진에 대한 대비를 재검토하여 다음세대에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니시다교수는 생각한다.
니시다교수 "(재해가 나면) 지금 시대에도 정보가 한정되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도망가지 못한다기보다, 화재가 닥치는걸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마무라 등의 보고서는 매우 귀중한데,
영상과 지도를 대조함으로써 피난상황 등을 객관적으로 알아내서 그것을
확실하게 다음세대에 남겨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발견된 영상에는 사상초유의 재해 속에서 사람들이 애써 살아가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도쿄에서 소실되지 않은 몇안되는 병원들. 밀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우에노(上野)공원에 있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동상에는 수많은 벽보가
붙여졌다. 흩어진 가족에게 필사적으로 안부를 전하려고 한 것이다.
각지에서 단수되어 심각한 물부족에 빠졌다.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적은 물을 서로 나눴다. 피난소에서는 지진직후부터 식사가 제공됐다.
피해지역에 의연금을 모으는 어린이들. 교토에서 촬영된 영상이다.
일본국내에 그치지 않고, 해외에서도 의연금이 모여져 그 금액의 현재의 가치로
1,800억엔에 달했다. 그런 도움에 힘입어, 괴멸된 지역이 부흥으로 향했다.
불탄 자리에 급속히 진전되는 건설공사. 사람들이 다시 생활을 되찾으려고
움직인 것이다.
그로부터 90년. 일본의 수도는 거대지진을 겪지않고 번영해왔다.
그사이 도쿄인구는 약4배로 증가했다. 그에 따라 주택지가 교외로 확대되고
전쟁뒤 일본의 발전은 도쿄에 집중돼왔다.
만일 지금다시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 어떤 피해가 날 것인가.
지자체 예상이나, 전문가 분석을 토대로 M8급 판경계형지진이 일어난 경우를
시뮬레이션했다. 최대진도7의 극심한 흔들림이 수도권을 덮친다.
특히 심각한 피해가 나는 곳은 매립지다. 액상화가 발생한다.
이것은 액상화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나타낸 지도다.
90년간 10배로 넓어진 매립지를 조준사격하는듯한 피해가 예상된다.
90년전에는 없었던 인공조성된 대규모 주택지가 광범위하게 붕괴될 우려가 있다.
그물처럼 뻗은 도로가 파괴되고 낙차가 생겨, 통행불가되는 곳이 60곳이상.
도시의 도로망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내진, 내화가 진전됐지만 건물피해도 적지않다.
흔들림이 가장 강한 가나가와에서만 전손되는 건물이 41만채.
전체 건물의 20%에 달한다.
화재발생은 약1,400건에 달한다고 예측된다.
또다시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 90년전에는 생각할수도 없었던 피해가
광범위하게 야기될 가능성이 떠올랐다.
고도로 도시화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리스크에 처해져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번에 관동을 덮칠 지진은 언제 일어날 것인가.
이마무라는 그 단서도 남겼다.
관동대지진 뒤에 지진을 예측하기 위해서 이마무라가 주목한 것은
땅에 남겨진 지진의 흔적이다. 진원역 위에서 크게 땅이 융기했다.
이마무라는 그 융기가 지진 때마다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다음번 지진의 예측에 도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마무라의 생각은 현대의 과학자에게 계승되어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시시쿠라 마사노부(宍倉正展)씨.
시시쿠라씨 "단구(段丘)가 있는 것이 보이죠.
실제로 우리가 하고있는 조사수법은 기본적인 부분이 이미 90년전에
이마무라선생에 의해 행해졌었다.
단을 하나하나 조사함으로써 과거에 융기한 역사를 알수있다."
해안선에 있는 깎여진 바위. 관동대지진 때에 융기한 것이다.
이곳은 진원역의 바로위에 위치한다. 지하에서 판이 미끄러지면
진원역 바로위에서는 땅이 튀어오른다. 이때 해안선의 땅이 융기되는 것이다.
관동대지진으로 융기된 바위보다 위쪽에도 또하나의 단차가 있었다.
지질조사에 의해 그것은 300년전의 지진으로 융기된 것이라 밝혀졌다.
보소(房総)반도에는 지진으로 융기한 흔적이 더욱 많이 남아있다.
관동 직하에서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융기가 되풀이됐던 것이다.
발견된 것만으로도 거대지진은 과거 16회.
지질조사로 각각의 지진연대를 알게됐다. 그결과 판경계형지진이 일어나는
가장 짧은 간격이 200년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발생한 것은 90년전의 관동대지진. 앞으로 100년간은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됐었다.
그러나 최근 보소반도의 다른곳에서 이루어진 조사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않은
연대의 융기가 발견됐다. 시시쿠라씨는 지금까지 알고있던 지진 간격이
실제와는 다를 가능성도 있는 게 아니냐며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시시쿠라씨 "수백년, 수천년이라는 역사속에서는 실은 더 다양하게 여러종류의
지진이 일어났던 게 아닌가 하는 것을 최근 알기 시작했다.
관동지진은 어쩌면 금방 닥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관동직하 판경계에서 지진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우려를 하는
과학자가 또 있다. 교토대학 니시무라 다쿠야(西村卓也)준교수다.
GPS를 써서 땅의 움직임을 mm 단위로 포착하는 조사를 하고있다.
이것은 GPS가 포착한 관동지방 땅의 움직임이다.
가나가와현 남부 및 보소반도에서는 연간 최대3cm씩 북북서로 이동하고 있다.
관동지방 밑으로 파고드는 필리핀해판도 연간 3cm씩 이동하고 있다.
필리핀판에 밀려서 땅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때 판경계에는 변형이 쌓인다. 그것이 한계에 달하면 지진이 발생한다.
변형이 해방된다.
니시무라교수는 GPS를 해석해서 어디에 변형이 쌓여있는지 계산했다.
그러자 오렌지색 부분에서 특히 변형이 쌓여있는 것을 알게 됐다.
니시무라교수 "보소반도 서쪽인데 1923년 관동대지진 진원역이었던 곳이다.
그와 더불어 보소반도 동쪽에서도 거의 같은 속도로 변형이 쌓이고있다.
현재 어느정도의 변형이 쌓여있는가. 판경계 전체적으로 보자.
이곳에서는 300년전의 지진(1713년)으로 거의모든 변형이 해방됐다고 보고있다.
그후에 변형이 연간3cm씩 쌓이고있다면, 100년에 3m, 200년뒤에는 6m에 달한다.
그때 관동대지진이 발생해서 판경계 서쪽 변형은 해방됐다고 생각된다.
한편 동쪽에서는 변형이 해방되지 않은채 쌓이기만 하고있다.
현재 변형이 9m에 달했다고 생각된다. 관동대지진 당시를 훨씬 넘은 것이다.
니시무라교수 "변형이 쌓인 영역이 보소반도 앞바다에 꽤 넓은데
그 면적으로 계산하면 M8급 지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잠재력이
보소 앞바다에 있다."
300년간 변형이 쌓이기만 하고있는 판경계 동쪽..
다음번 관동을 덮치는 거대지진은 이곳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니시무라교수는 생각하고 있다.
니시무라교수 "진원역에서 도쿄도심까지 거리가 짧아서, 우리가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흔들림이 덮칠 것도 생각되며, 지진직후에 곧바로 쓰나미가
닥칠 것도 생각된다."
이만한 대도시에서 판경계를 직하에 두고있는 곳은 달리 없다.
관동대지진으로부터 90년. 우리는 반복해서 거대지진이 덮치는 곳에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대도시를 구축해온 것이다.
관동대지진을 기록하고 튼 교훈을 남긴 이마무라 아키쓰네.
그후 교수가 되어 거대지진 예측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시민에게 지진재해 예방을 호소했다.
이마무라의 육성이 남아있다. "지진은 사람의 힘으로 억누를 수 없지만
지진재해는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 남녀노소 힘닿는 데까지
지진재해를 되도록 경감시키는 일에 용감하게 나서야 한다."
관동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가나가와현 오다와라(小田原)시.
90년전 그날 역에 정차해있던 열차가 산사태에 떠밀려 바다에 빠졌다.
차량 두칸만을 남긴채 열차는 바다에 가라앉아, 200명이상 희생됐다.
해저에 뻗어있는 금속막대. 가라앉은 열차의 부품이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네모난 돌은 역의 승강장 홈의 일부다.
발밑에 있는 관동대지진의 흔적. 아직 우리가 모르는 귀중한 교훈이 숨겨져
있는 게 틀림없다.
과거의 거대지진의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 이어진다.(끝)
2013년 9월 26일 목요일
미국에서 시민이 원전을 폐로로 몰아붙인 내막을 강연
미국에서 시민이 원전을 폐로로 몰아붙인 이유
당사자가 캘리포니아주 원전을 둘러싼 공방을 증언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모든 원전을
폐로하기로 결정한 독일만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이 입지하는
미국에서도 원전이 잇따라 폐로에 내몰리는 사태가 되고있다.
얼마전 캘리포니아주에서 샌 오노프리(San Onofre)원전을 폐로로 몰아붙인
활동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주민대표와, 후쿠시마 원전사고당시 미국 NRC
위원장을 지냈던 인물이 방일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시작된 탈원전
움직임과 시민에 의한 행동의 중요성에 대해 도쿄에서 강연했다.
←샌디에고포럼(San Diego Forum) 시민측 대표로,
주택도시계획건축가 도건 존슨(Torgen Johnson)씨
샌 오노프리원전을 폐로로 몰아붙였다
'후쿠시마원전사고가 미국에 끼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9월23일 강연회
(주최는 원자력자료정보실)에서 강연한 것은 샌디에고포럼 시민측 대표로,
주택도시계획건축가 도건 존슨(Torgen Johnson)씨와 전직 NRC위원장
그레고리 야스코(Gregory Jaczko)씨다.
일본과 비슷한 미국의 원전을 둘러싼 구도
존슨씨는 2011년3월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캘리포니아주에서
최대규모 원전의 폐로를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2년뒤인 2013년6월4일에는
야스코씨와 일본의 칸 전수상 등을 초빙하여
'후쿠시마:캘리포니아로 현재진행중인 교훈'이라는 강연회를 개최했다.
그 사흘뒤 샌 오노프리원전을 폐로한다고 전력회사 Southern California Edison사가
결정했다. 현재 폐로를 위한 작업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폐로에 내몰린 샌 오노프리원전 2호기 및 3호기(각 출력108만kW, 가압수형경수로)
운전을 정지한 것은 2012년이었다. 2012년1월에 3호기에서 미쓰비시중공업제
증기발생기에서 방사능누출이 발견된 것이 계기였다. 다만 존슨씨에 의하면,
"증기발생기의 불량은 폐로를 향한 최후의 일격이었으며, 가동정지는 캘리포니아
주민이 원전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부터
주민에 의한 끈질긴 운동이 원전을 폐로에 몰아붙인 원동력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원전과 입지 지자체의 관계는 일본과 비슷한 모양이다. 존슨씨에 의하면
고용확보를 이유로 입지 지자체가 원전을 유지하려고 하는 구도는 미국에서도 존재하며,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시점에서는 "선거로 뽑힌 사람들은 원전문제에 전혀 관계하고
싶지않다는 자세였다."고 말한다.
또한 후쿠시마 사고이전으 정보는 많은 부분이 전력회사로부터 제공된 것이며,
"원전은 청정하고 안전하며 신뢰성이 높고, 비용도 매우 싸다는 낙관적인 정보투성이였다."
"전력회사 홍보부문 책임자가 지역의 개발계획을 담당하는 행정조직 책임자를 맡고 있거나,
현지 상공회의소, NGO나 환경단체에까지 기부를 하고있던 것도 나중에 드러났다."고도
존슨씨는 말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그런 지역사회의 모습에 근본적인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원전사고로부터 2주밖에 안된 사이에 8,800km나 떨어진 존슨씨 동네에서 팔리던 우유에서도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 존슨씨가 나서게 된 계기였다.
"3명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로서, 아내와 나는 일본에서 벌어지는 원전재해의 실정과,
우리집에서 48km밖에 안되는 샌 오노프리원전의 안전성을 조사했다."
존슨씨네는 원전의 입지상황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주의 쓰나미의 역사나 활단층에
대해서도 공부를 더해갔다. 그로부터 많은 것을 알게 됐다. 2개의 원자로가 해안에 너무
가깝게 설치돼있는 것과, 활단층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 반경80km권내에 740만명이나
사람들이 살고있는 것을 알게됐다.
만일의 경우에는 막대한 피해금액, 내부관계자도 중대증언
그리고 반경48km권내의 도시에서 주택가격을 통해 시민그룹멤버들이 계산했더니,
주택가격은 4,355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금액은 미국의 프라이스-
앤더슨법(Price–Anderson Nuclear Industries Indemnity Act)이 규정하는 원전사고시의
배상 상한액 1265억달러와 비교해서 그 30배를 훨씬 넘는 것이므로, 만일 원전이
대사고를 일으키면 주민이 거액의 재산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샌 오노프리원전의 위험성이 인식되는 가운데, 내부에 정통한 관계자도 증언을 시작했다.
원전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우려하기 시작했으며, 샌 오노프리원전의 격납용기를
설계한 수석엔지니어가 "격납용기는 입지조건에 견딜만한 설계가 아니다. 40년수명이 되면
바로 폐로해야 한다. 20년 연장가동은 인정돼선 안된다."라고 현지 시의회에서 발언했다.
"샌 오노프리원전과 관련한 심각한 사태가 널리 주민에게 알려지게 됐다."(존슨씨)고 한다.
또한 일본으로부터 후쿠시마 원전사고후에 피난해온 2 가족에 의한 시의회 발언도
의원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존슨씨 등 주민의 운동에 의해 LA시를 포함한 현지 지자체 의회가 잇따라 재가동에 반대를
표명했다. 연방상원 환경공공사업위원회에서도 주민을 지지하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존슨씨에 이어 강연한 야스코씨는 NRC위원장으로서 원자력규제행정의 책임자를 지낸
인물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3월17일에 주일 미국대사관은 주일 미국인에게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80km권밖으로 피난할 것을 권고했는데, 그때 데이타를 분석해서
조언한 것이 야스코씨가 이끄는 NRC였다.
←시민에 의한 행동의 중요성을 호소하는
그레고리 야스코 전직NRC위원장
그 야스코씨의 눈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어떻게 비쳤는가. 또한 어디에 문제가
있었다고 야스코씨는 보고있었는가.
야스코씨는 일련의 사고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로서 "피난계획이 극히 취약했다."
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1979년에 일어난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의 교훈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그 중요한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16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던 고향을 떠나야만 했으며,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라고 야스코씨는 힘주어 말했다.
야스코씨는 2012년8월에 원전사고의 피난지시구역을 방문해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피난주민들의 체험담을 들었다.
야스코씨에 의하면 "미국에서도 원전의 안전성은 극히 취약했다."고 한다.
후쿠시마 사고후에 NRC는 태스크포스를 설치하면서 안전시스템의 취약성을 밝혀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알게 된 것이 "외적인 사고나 재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던
것이었다."고 야스코씨는 말했다. 야스코씨는 작은 지진에조차 대비가 없었던
원전의 실태를 그 예로 들었다.
시민의 행동이 원자력행정을 바꾼다
야스코씨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고, "새로운 원자력의 안전에 관한 기준을
다시세워야 한다."고 결심했는데, 대담한 규제강화에 반대하는 여타 NRC위원과의
대립이 심해져서 위원장직을 사임하게 됐다. 2012년5월이었다.
"새로운 기준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어떠한 사고이건
단 한사람이라도 피난하게 되는 사람이 나오는 사태에 빠뜨려서는 안되며,
원전부지밖이나 바다가 오염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일본의 비극으로부터 배울
기회를 살려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에너지정책, 안전기준을 실시해야할 필요가 있다."
고 야스코씨는 힘주어 말했다.
게다가 야스코씨는 시민에 의한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시민이 행동해야 한다. 시민 여러분은 정치가를 움직이도록 할 책임을 지고있다.
그리고 존슨씨가 (캘리포니아 주민운동으로)보인 것은, 곧바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끝)
스패너가 뭐예요? 나사는 어느쪽으로 돌려요?
"스패너가 뭐예요?" 이와키시 의원이 고발!
초보 집단이 된 원전작업원 실태
기계도 고물 투성이
저수탱크로부터 오염수누출, 고장투성이 ALPS(다핵종 제거장치), 태형 크레인사고
등 고장이나 사고가 속출하는 후쿠시마원전. 분명한게 도쿄전력의 너무나 허접한
체질인데, 원전작업원들로부터 상담을 받고 있는 후쿠시마 이와키시의회 와타나베
(渡辺博之)의원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고있다."고 단언했다. 사람이 안모이는 것이다.
"원전 현장에서는 갖가지 작업이 잇는데, 도쿄전력이 싸구려 가격으로 입찰을
때리기 때문에 업자들간에 서로 제살깎기가 되어, 기술력이 없는 업자가
'싼게 비지떡' 상태로 낙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업자는 작업원한테 위험수당도
주지않으니까, 인건비도 적다. 가장 싼 경우 일당6,000엔이다. 방사선량이 높아
위험한 현장인데, 이래서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그 결과 원전은 물론 건설현장 경험조차 없는 작업원이 후쿠시마원전에서 늘고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건설현장 경험자가 20% 정도라고 들었다. 놀랍게도
'나사를 오른쪽으로 돌리는가, 왼쪽으로 돌리는가' 묻거나 '스패너가 뭔가요'라고
진지하게 묻는 작업원도 있다고 한다."
와타나베씨에게 전해진 작업원들의 '고발'에서도 현장의 상황이 설명돼있다.
"누군가가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그런 일은 없다. 전쟁터다. 각자가 자기일로
벅차서 남한테 신경쓸 여유따위 없다."
"제일 요구되는게 '빨리!' '빨리!' '빨리!'"
"하청업자가 빈번하게 바뀌게 됐는데, 제대로된 도면도 없어,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작업에 쓰는 중장비에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후쿠시마원전에서 쓰이는 크레인 등은
고농도 방사능으로 오염됐기 때문에 원전밖에서는 쓸수없다. 그래서 사용후에는
도쿄전력이나 원청업자인 건설회사 등이 중장비업자로부터 사들여서 폐기하게 된다.
그러나 값이 깎일 게 뻔하기 때문에 중장비업자가 새것이 아닌 중고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크레인 등은 전부 골동품 투성이다."라고 들은 적이 있다. 너무나 낡아서
움직이지 않을 때도 종종 있다고 한다. 최첨단기술이 필요한데, 하는 짓은
전쟁당시 죽창을 쓰던 작전이다."(30대 작업원)
기술이나 지식이 없는 작업원이 골동품 기계를 움직인다...
이래서는 사고나 고장이 속출하는 게 당연하다.(끝)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비와(琵琶)호 주변 M7.9 지진예측은 10월5일 전후
쿠시다 요시오(串田嘉男)의 FM전파 전리층 이상신호를 지진전조로 포착하는 지진예측법에
의해, 무려 5년이상 관측되고 있는 일본 비와(琵琶)호 주변 즉, 킨키(近畿)지방의 대지진전조현상..
↑ 지난 2013년8월까지 관측되던 이상신호들은 5단계 묶음으로, 제5스테이지까지 이어졌다.
각 스테이지 이상신호들이 수렴될 때마다, 지진예상날짜가 계산되었지만, 결국 다음단계
이상신호들이 나타나면서, 다음 스테이지로 이어지고, 지진예상은 연기돼왔다.
제5스테이지 이상신호들이 수렴되면서 지진예상날짜는 9월6일전후로 보였으나,
다시 새로운 이상신호가 나타났다. ↓ 전조는 제6스테이지로 이어졌고, 지진 예상날짜는
제6스테이지의 이상신호들이 수렴되는 이후로 또다시 연기되었었다.
2013.9.21 Yatsugatake South Base Observatory(쿠시다 요시오, 串田嘉男) No.1778 장기계속 특수전조(前兆) 속보(続報) No.045 킨키(近畿)권 지각 대형지진의 가능성추정 전조 2008년7월초순부터 5년2개월이상 이어진, 유례없는 장기계속 전조(前兆)다. 그동안 제6스테이지까지 전조들이 한묶음씩 단계적으로 출현하면서, 각 스테이지에서는 여러개의 극대점이 존재하는 양상으로서, 처음겪는 특수한 지진전조형태라고 한다. 이제 지금의 현황은.. 제5스테이지에서 각 전조군이 가리키던 예상날짜 9월5일에는 결국 극대점이 여러개 나타났다. 그뒤로 제6스테이지의 이상신호가 이어지고 있는데, 각 신호 채널에서 9월5일의 극대점 외에도 9월13일, 17일, 19일 등에서 극대점이 나타나고 있다. 각 채널의 초기출현 날짜와 극대점의 관계를 이하 경험칙에 의해서 계산했더니, 모두 10월5일이 예상날짜로 도출됐다. 경험칙 신호출현~지진발생까지 : 극대점~지진발생까지 = 20 : 13 신호출현~극대점까지 : 극대점~지진발생까지 = 7 : 13 제6스테이지 신호채널의 극대점 출현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양상도 보인다. 이하처럼 그래프로 나타내면 알기쉽다. 9월19일의 극대점 다음에 나타날 간격은 1~2일 정도밖에 안될 추세다. 그에 따라 최종적인 극대점이 21일까지 나타난다고 가정하고, 제6스테이지가 가리키는 지진예상날짜를 10월5일전후로 볼 때, 10월2일까지는 신호가 수렴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적으로 제4스테이지=345일, 제5스테이지=134일, 제6스테이지=30일. 이런 경향을 볼 때, 만일 신호가 수렴되지 않고 제7스테이지로 넘어갈 경우 제7스테이지=1주일 정도의 길이가 될 가능성도 있다.(끝) ◇◇◇◇◇◇◇◇◇ 그렇다면 10월5일을 넘기더라도, 그다음은 10월중순이 될거같다는 얘기. 이제 연장돼도 한달이내로 쫄아든 단계에 접어들었다. 여기까지 되고보니, 이거 혹시 제7스테이지=1주일을 넘긴다면, 제8스테이지는 며칠 안되고, 금방 자동으로 지진날짜 돼버리는거 아닌가? 마지막은 그런 시스템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든다.. 그 경우에도 10월은 벗어나지 못할거같다.. 이하 지진예측 요약이다. 추정 지진 종류: 얕은 내륙 지진 추정 영역: 이하 짤에서 빗금 붉은 부분 추정 규모: M7.9±0.5 추정 시기: 10월5일± 그리고 만일 터질 경우에 와카사만(若狭湾)에는 몬쥬를 비롯한 원전들이 즐비하다. 일명 '원전긴자(銀座)'다. 위에서 예상한 진원영역에 송두리째 포함된다. 주변에 단층들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에서 가동하다 얼마전에 정기검사 들어간 오오이(大飯)원전 3호기와 4호기도 있다. 또다시 일본전체 원전이 정지되었다. 그러나 예상되는 대지진이 터지면 사용후핵연료가 무사할지 알수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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